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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무한 지 5년이 좀 넘은 철도원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중앙선 충북 단양 도담역. 다소 낯설게 느껴질 법한 역이지만 화물수송에 있어서는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역이다. 하지만 매포읍 평동리라고 하는 작은 마을을 끼고 있는, 여객수송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별볼일 없는 역이다.
하루 상하행 합쳐 10여 차례씩 여객열차가 정차하기는 하지만 하루 손님이라고 해봐야 10여명 안팎이다. 손님이 적다보니 전문 매표직원 없이 다른 업무를 보다가 손님을 맞게 된다. 평동마을도 역에서 2~3km 정도 떨어져 있어, 역 주변에는 시멘트 공장을 제외하면 황무지밖에 없다.
많지 않은 손님이지만 간간히 오고가는 손님들을 맞다보면 먹을 것을 챙겨 주시는 분들도 있고 들어줄 이 없는 하소연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며 떼를 쓰는 분들도 있다.
이처럼 나름대로 정이 넘쳐나는 것은 대부분의 손님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렇지만 그분들도 정이 많다. 그런 노인분들이 우리 역에 주로 오시는 이유는 바로 값싼 열차 요금 때문이다.
값싼 열차란 4월1일 운행이 중단된 통일호를 말한다. 오전 6시에 청량리를 출발해서 10시35분에 도담역을 통과, 오후 6시에 종착역인 부전역에 도착하는 1221열차다. 1222열차는 부전에서 오전 6시 정도에 출발해 청량리에 오후 6시 정도에 도착한다. 말하자면 하루에 상하행 한 번씩 운행하는 열차인 것이다.
고속철이 서울~부산간을 2시간대에 주파한다고 하는 스피드 시대이지만 이 통일호 열차는 12시간 동안 중간에 역이라고 생긴 곳은 전부 정차하고 운행한다. 지겨운 12시간이지만 그래도 운임료가 엄청 저렴하기 때문에 즐겨 이용하는 승객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연세가 많은 노인분들이다. 부전행 통일호 열차를 타려면 10시35분에 맞춰 오면 되는데도 그 분들은 1~2시간 전에 도담역에 오신다. 도담역으로는 버스가 오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평동에서 일찍 서둘러 걸어서 오시는 것일게다.
몇몇 낯익은 분들에게는 인사도 건네고 안부도 여쭌다. 대부분 손자 손녀 보러 먼길 가시는 분들이다. 여기서 먼곳이라면 경주, 울산, 부전 등이다. 젊은 사람이야 더 빠른 무궁화호나 버스, 승용차로 움직일테니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들은 한없이 느리고 느린 이 기차를 이용했다.
도담에서 부전까지 보통 운임이 7400원이지만 65세 이상 노인분들에게는 50% 할인을 적용하기 때문에 3700원이다. 가까운 거리까지의 택시비도 안 되는 돈으로 그 먼 부전역까지 갈 수 있으니 늘 어렵게 살아오신 노인분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교통수단이 없는 것이다.
손이나 등에는 아들네 가져다 주려고 꾸린 보따리가 가득하다. 어찌나 무거운지 홈까지 들어드리다 보면 나도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늘 웃고 있다. 아들이며 손자손녀를 보고픈 생각이 앞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통일호 열차의 운행이 4월1일자로 중단되었다. 수익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당연하다. 공익을 앞세우기에는 이 노선의 적자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이 노선뿐 아니라 모든 구간에서 통일호의 운임으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운행을 하면 할수록 손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면서 도담역에는 여객손님이 많이 줄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도 안 오신다. 열차 중단이 결정됐을 때 적잖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담역으로 항의전화를 걸어왔다. 열차운행을 계속하라고 우기시는 분들, 그럼 부전까지 가는 다른 열차는 없느냐는 분들….
부전까지 가는 열차가 하나 더 있긴 하다. 무궁화 열차. 그런데 부전까지 운임이 노인 할인을 적용해도 1만3천원을 넘는다. 3700원에 타고 다니시던 노인분들이 1만3천원이라는 돈을 내고 이용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3700원에 부담없이 손자 손녀를 보려고 다니시던 그분들은 앞으로 아마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 먼길을 비싼 돈 들여 가시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노인분들의 큰 낙을 우리가 빼앗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통일호는 약한 서민을 위한 열차였다. 수익을 내야 하는 철도청의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주말 하루에 KTX를 이용한 손님이 10만명을 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어쩌면 남은 평생 KTX는 고사하고 새마을열차도 타보기 힘들 평동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시 생각난다. 어떤 식으로든 대책이 세워져서 그 분들이 다시금 양손에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환한 웃음으로 부담없이 우리 역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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