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17

측간신의 집 2

등록 2004.04.22 07:19수정 2004.04.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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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는 기가 막혔습니다. 제일 먼저 만나야하는 신이 왜 하필 측간신이람. 가면 분명히 구린내가 장난이 아니겠군. 바리는 염려가 되었지만, 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백호가 한숨을 폭 쉬며 말했습니다.

“ 에유, 저 산 두 개를 넘으면 오늘 해가 다 지겠다.”
“ 백호야. 오늘 너무 많이 걸어서, 산을 더 이상 못 넘겠어, 백호야, 나 좀 태우고 가.”


바리는 그냥 그렇게 주저앉으면서 말했습니다.

도라지 언니가 말했습니다.
“염려하지 마, 우리가 데려다 줄게.”
바리가 '어떻게' 하며 묻는듯 그냥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다른 선녀 언니가 말했습니다.
“ 날개옷을 같이 입고 가면 되지. 마침 저기까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문제 없이 데려다 줄 수 있어.”
“ 측간신은 저 산너머에 흙집을 짓고 사셔. 들어갈 때 조심해야한다.”
다른 언니가 미소를 띠우며 말했습니다.

도라지 선녀는 어깨 위로 나풀거리는 얇은 천을 바리 쪽을 향해 당겨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천이 죽 들어나면서 바리의 몸을 감싸안았습니다. 백호도 다른 선녀가 자기 옷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오더니 바리의 몸이 떠올라 금새 산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바리는 언제라도 선녀의 날개옷이 몸에서 풀어질까봐 겁이 났지만, 바리의 몸에서 나풀거리는 그 옷은 무엇으로 묶어놓았는듯 바리 몸을 계속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아래로는 마을도 보이고 길도 보였습니다. 해가 지고 있는 중이라 저산 너머에는 노을이 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노을의 모습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을 지나서 노을이 지는 쪽으로 계속 날던 선녀들은 어느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숲 속에 들어가자 이전에 맡아보지 못한 온갖 풀냄새가 향기로왔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들을 휙휙 지나 신나게 날던 바리와 백호는 어느덧 어느 황량한 들판으로 들어섰습니다.

주변에 집들이 아무것도 없고, 황량한 들판에 흙집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굴뚝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듯 연기 하나 피어오르지 않았고, 지붕 역시 지푸라기 하나 얹히지 않은 흙지붕이었습니다. 굴뚝이 없다면 그냥 흙으로 만든 커다란 상자 같았습니다. 분명 은행나무 돌문을 통해서 들어온 사람만 볼 수 있는 이상한 세계인가 봅니다.


“ 저기가 측간신이 사는 집이야.”

도라지 언니가 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화장실을 지키는 신이라는데, 주변에는 이상한 냄새가 하나도 안 났습니다. 측간신이 청소를 꽤 잘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리는 8선녀들을 뒤에 남겨두고 백호와 함께 그 네모다란 측간신의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한쪽 벽에 문처럼 생긴 틈이 보였습니다. 네모처럼 금이 그어진 곳이 문처럼 생기긴 했지만, 문고리도 없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열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백호는 말했습니다.

“바리야 조심해.”
“왜 ? 사람을 잡아먹어?”

백호는 기가 막힌 듯 말했습니다.

“ 가신들은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 아무튼 무서운 분은 아니지만, 조심해야해. 들어가기 전에 인기척을 하지 않으면..."

바리는 호랑이가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고 문고리만 찾고 있었습니다.

“ 이 문을 어떻게 열지? 문고리도 없고 .”

바리가 여기저기 문을 더듬고 있을 때, 갑자기 손이 흙벽 안으로 확 빨려들어가더니 문이 화들짝 열렸습니다. 깜짝 놀란 바리가 몸을 뒤로 젖히자, 안에서 시커먼 실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갑자기 화악 뛰어나와 바리를 끌어안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바리야!”

백호는 바리의 이름을 부르며 흙사이로 열려있는 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리는 실같이 생긴 시커먼 것들에 휘말려 비명을 지르면서 공중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너무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손으로 그 검은 실들을 마구 헤치자, 저 아래 흙바닥이 보였고, 부리나케 들어와 그 앞에서 절은 하고 있는 백호가 보였습니다.

그러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왠놈이냐! 왠놈이야!!”

백호가 말했습니다.

“ 저희들은 백두산 산신의 어명을 받고 여행 중인 나그네들입니다.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바리를 놓아주세요.”

“ 수백년간 내 문을 열고 이 집 안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어, 대체 너희들이 요괴들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그 검은 실들은 바리의 몸을 더욱 조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리는 더 크게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 이건 계집아이야, 돼지새끼야, 왜 이리 소리를 질러대.”

바리를 떨어뜨리려는듯 바리를 휘어잡은 그 검은 실들은 공중에서 더 흔들어댔습니다.

“측간신님, 진정하세요. 진정을.....”

백호가 머리를 땅에 처박고 말했습니다.

“ 이 아이에게 조심해야한다고 그렇게 일렀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문을 열어서 측간신님을 놀라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렇게 여의주를 가지고 측간신님을 찾아온 겁니다.”

백호가 여의주를 꺼내보이자 바리의 몸은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바리는 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비명을 멈추지 않다가 땅에 내려서는 순간 멈추고 백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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