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한길사
프랑스의 작곡가 쇼송은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솔직한 것은 없다"고 하여 인간이 지닌 기본적 욕구로써 음식에 대한 갈망을 인정하였다. 굳이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며,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산다.
작가 박완서는 이 책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을 통해 어린 시절 간식처럼 먹었던 칼싹두기라는 음식에 대해 추억한다. 늘 배고프던 시절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만든 소박한 음식 칼싹두기. 그녀에게 있어 이 음식은 어린 시절 화기애애했던 가족의 의미와 공존한다.
"땀 흘려 그걸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좀 전의 고적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이렇게 화목한 집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기쁨인지 감사인지 모를 충만감이 왔다. 칼싹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이렇듯 각기 외로움 타는 식구들을 한 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젓가락으로 찍어서 밥 위에 얹어주던 간장 게장의 고소한 맛, 호박잎쌈의 순박한 향기.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과거의 밥상들은 혼자 사는 그녀의 사색 속에서 즐거움으로 자리한다. 풍요로운 외식보다 구수하고 간소한 식사가 주는 기쁨이야말로 진짜 삶에서의 휴식과 같은 것이다.
소박한 밥 한 그릇이 주는 즐거움은 소설가 최일남의 글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러 다녀온 기자들의 글 중에서 북한의 음식 이야기가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부터가 남다른 관점이다. 먹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일진대 북한 음식 또한 그들의 삶의 일부가 아닌가.
소설가 신경숙은 어린 시절 추억의 음식으로 고구마를 꼽는다. 긴긴 겨울동안 많은 식구들을 위한 간식거리로 존재했던 부대 자루 속의 고구마. 고구마가 사라져갈 즈음 긴긴 겨울은 자취를 감추고 봄은 슬그머니 사람들 곁을 찾아온다.
"겨울 초입 큰방의 고구마꽝에 가득 쌓여 식구들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듣고 있던 고구마들이 푹 줄어들고 맨바닥의 것이 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봄이 온 거였다. 어느 날 누군가 고구마꽝을 걷어내고 바닥에 냄새를 풍기며 남아 있는 고구마를 퍼다 버리면 봄이 문지방까지 왔다는 얘기였다. 물고구마와 생무를 먹으며 겨울을 통과해 오면 나도 모르게 쑥 커버린 느낌이었다."
음식을 만들어내는 부엌 또한 그녀에게는 추억의 공간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수십 년 묵은 재래식 부엌과 함께 존재한다. 묵묵히 파를 썰거나 마늘을 찧다 보면 재래식 부엌에서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내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음식이 절대 접할 수 없는 '황송한 것'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의 고통 속에 시달렸던 작가 공선옥에게 있어 쌀은 절대로 지닐 수 없는 대상이었다. 소금에 담가 떫은 맛을 우려낸 감을 먹으며 '그래도 쌀이 생긴다는 생각에 배고프지 않았다'는 어린 그녀.
이처럼 음식이란 어느 누군가가 지니고 있는 기억과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음식의 맛 또한 그것을 먹을 당시의 분위기와 함께 기억된다. 어린 시절 남동생이 지닌 절대적 권력에 짓눌려 환영받지 못했던 여자아이로 남았던 화가 정은미. 그녀에게 초콜릿은 자신을 위로하는 유일한 대상이다.
"무지막지한 고집에 사근사근하지 않은 여자아이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당연했다. 그 시절, 나를 위로한 건 다름 아닌 초콜릿이었다. 이상하게도 초콜릿을 물고 있으면 기분이 풀렸다. 방안에 틀어박혀 서랍 안에 꼬깃꼬깃 숨겨놓은 초콜릿을 입안 가득 물면 어느새 난 천하태평, 희희낙락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음식은 이처럼 고독을 달래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일본 유학 시절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음식 '나베 요리'를 기억하는 만화가 고경일. 그는 삭막하고 답답했던 일본 생활 동안 자신을 초대해 준 주인집 아줌마가 끊여준 이 요리를 잊지 못한다. 이 때에 음식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함께 기억되는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이오덕 선생님은 밥 속에 담긴 온정을 이야기 한다. 그는 "멀쩡한데 밥맛이 없다는 사람, 그래서 밥을 먹다가 예사로 남겨서 버리는 사람을 미워한다"고 표현한다.
밥은 목숨이고 모든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는 것일진대, 함부로 버리는 이는 그 마음 또한 믿을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요리하는 과정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요리는 몸으로 익혀지는 예술'인 것이다. 맛있게 먹고 많이 만들어 본 사람은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비록 그 체험의 과정에 실패가 있을지라도, 음식을 만들고 맛보는 과정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모두에게 있어 음식은 기쁨이며,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게 될 때에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한 과정과 노력'을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그리 쉽게 그 즐거움의 산물을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맛있는 밥 한 그릇이 주는 기쁨이 쓰레기통에서 썩고 있는 것을 기분 좋게 지켜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박완서 외 지음,
한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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