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3집 <거울놀이>배성록
우리 스스로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잠든 사이에 온갖 인체 작용과 변화를 경험한다. 수면은 크게 네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며, 여기에는 졸음과 같은 얕은 잠과 깊고 깊은 잠, 꿈꾸는 렘 수면과 꿈을 꾸지 않는 논 렘 수면, 깨고 난 뒤에도 기억나는 꿈과 지워져 버리는 꿈과 같은 복잡한 과정이 관련되어 있다.
특히 신비로운 것은 잠든 동안에도 끊임없이 기억의 밀물과 리비도의 썰물을 내보내는 정신의 작용이다. 꿈을 통해 표출되는 뇌의 움직임 속에서는 우리의 잠재된 욕구와 오래 묵은 기억, 불안과 공포 등의 감정이 수면 위로 들고 나기를 반복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꿈은 어딘가 불안정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데다 뒤틀려 있게 마련이며, 그 영상은 아련하고 흐릿한 단편으로 느껴진다. 마치 오랜 시간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깨어난 뒤의 몽롱한 감각처럼 말이다.
1997년 결성된 3인조 슈게이징 밴드 잠(Zzzaam)은 꼭 자신들의 이름 같은 음악을 하는 팀이다. 이들은 온갖 노이즈와 이펙트로 기능하는 보컬 파트를 앞세워 수면과 꿈과 각성의 세계를 '묘사'한다. 대중음악이란 것을 무 자르듯이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으로 나눈다고 하면, 잠의 음악은 후자에 속한다.
이들의 음악이 목표하는 것은 정서적인 '반응'이고 그 반응에 대한 음악적 '재현'이다. 때문에 이들의 음악에서 보컬 파트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리버브(잔향)로 둘둘 말은 보컬은 가사가 들리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하며, 설사 들린다 하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이들의 음악을 하품하는 고양이처럼 얌전히 들으면서, 옛 기억의 어떤 순간과 그 순간의 감정을 가만히 되살리면 된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다. 잠의 세계를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깨어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 레이블 카바레사운드를 통해 새로 발매된 3집 <거울놀이>는 기존 잠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부분적이고 미시적인 변화를 꾀한 음반이다. 전자는 원년 멤버인 박성우-최소희의 오랜 콤비네이션에, 후자는 키보디스트 김남윤의 탈퇴 및 드러머의 교체에서 각각 기인한다.
여전한 것은 잠의 과정을 형상화하는 음악적 색채다. 꾸물꾸물대는 노이즈와 둔중한 베이스 리프(반복 연주), 아련하고 흐릿하게 울리는 보컬이 한데 뒤섞여 곡이 전개됨에 따라 점진적이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그 과정이 수면과도 같다. 핵심은 반복이다. 베이스와 드럼이 반복에 반복, 또 반복하며 양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를 거푸 불러낸다. 반복은 최면의 역할을 하며, 뒷전에서 미생물처럼 꿈틀대는 노이즈 덩어리는 환기의 기능을 한다.
노이즈는 알싸하게 퍼져 나가기도 하고, 컴퓨터 미디어 플레이어의 시각화 효과처럼 파동을 그리기도 하며 환기한다. 그것은 '거울놀이'에서처럼 불온한 느낌으로 드러나기도, '긴 머리 쓸어올리며', '따뜻했던 겨울 밤이었지'처럼 아련하게 흘러가기도, '싸이킥'과 'Sonicboom' 같이 기괴한 형상을 띄기도 한다.
지루하지는 않다. 이들은 각성의 측면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입술에 레몬'이나 '기우'에서 이따금씩 들려주는 최소희의 보컬이나, 소닉 유스(Sonic Youth)를 연상시키는 익스페리멘틀(실험적인 록) 'Sonicboom' 등이 그런 예다. 때문에 음반 전체는 환각을 불러내는 하나의 덩어리이기도, 각기 다른 감정과 기억과 감각을 호출하는 개체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그 구분이 모호하다. 실은 모호한 것이 잠다운 것이다.
물론 멤버가 줄어든 때문인지, 새 음반은 2집 < Requiem#1 >처럼 두텁고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잠의 음악은 '입술에 레몬'이라도 얹고 싶을 만큼 건조해지고, 심플해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 메마른 사운드 연출이 잠의 음악적 특성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어둡고, 더 뻑뻑해진 3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잠'이라는 밴드 이름에 걸맞은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단, 음악이란 따라 부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음반을 들을 필요가 없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지난 잠의 두 장의 음반이 모두 사장되는 비운을 맞았던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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