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37

애향이

등록 2004.04.26 17:46수정 2004.04.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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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요새는 생활이 어떠하냐? 자리를 비운다고 행수가 뭐라고 하진 않던?"

"쉬는 때에 홀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건데 자기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녁 진지는 드셨는지요?"


잠시 대화가 끊긴 후 덜그덕 문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애향이가 크게 소리쳤다.

"쌀이 없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끼니가 염려되니 애향이가 부엌으로 가 쌀독을 살펴본 모양이었다. 백위길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기방의 부엌에서 쌀을 좀 가져온 걸 부어 놓았으니 얼마간은 괜찮을 겁니다."

"얘야......"


"네 어머니."

"이제 그만 기방 생활 정리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높으신 양반들이 널 기적(妓籍 : 기생의 신분을 공적으로 등록해 놓은 대장)에서 빼준다고 할 때 진작 그랬다면......"


"또 그 소리입니까?"

애향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렇게 양반의 처첩으로 들어앉아 저만 기적에서 빠지면 어머니는 어찌 할 것입니까?"

"나야 딸을 기생으로 만든 못난 애미인데 아무려면 어떠냐?"

"어머니!"

원망 어린 애향이의 목소리에 백위길은 잠 기운이 싹 빠져나가는 듯 했다.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제게 기회를 주는 것이겠습니까? 노류장화(路柳墻花), 그저 길거리에 핀 예쁜 꽃을 꺾어다 놓는다는 기분으로 그럴 뿐입니다. 제게도 안 좋고 어머니에게도 좋지 않은 일입니다."

"알겠다...... 그만 자자꾸나."

애향 모녀의 얘기소리가 끝난 이후에도 백위길은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어 몸을 뒤척여야만 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녘에나 잠이 든 백위길은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드시오."

애향이의 노모가 밥상을 들고 들어섰고 백위길은 급히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상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 애향이와는 어떤 관계시우?"

백위길은 국을 한 숟갈 뜨려다가 그 말에 순간적으로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그게 저...... 그런데 애향이는?"

"나야 밭일 나간다고 아침부터 설레발 치지만 그 애야 기방 생활이 몸에 배여 아침에는 늦잠이라오. 어여 자시구려."

"......예."

아침을 먹고 옷을 입던 백위길은 소매부분이 묵직함을 느꼈다. 바로 어제 밤, 옴 한량이 던져주었던 엽전 꾸러미였다.

'어허...... 이것 참.'

백위길은 간밤에 들었던 애향 모녀의 대화를 떠올리며 엽전꾸러미를 방에 놓아두려 했다. 하지만 애향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건 저들에게 돌려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애향이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이 돈을 받을 리는 없다고 여긴 백위길은 다시 엽전꾸러미를 챙겨 넣었다.

'이건 어떻게든 돌려 줘야겠군.'

아침을 다 먹은 백위길은 애향이가 일어날 때를 기다릴 수 없어 일단 포도청으로 서둘러 들어가 김언로부터 찾았다.

"김포교님! 어제 통부는......"

"허! 그래 자네 어디서 뭐했나? 내 술이 과해서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네...... 글쎄 잘 살펴 보니 통부가 품속에 고이 모셔져 있었지 뭔가? 자네를 기다리다가 안 오기에 먼저 갔다네."

"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뭔가?"

백위길은 어제 강석배와 함께 머리를 민 한량일행을 봤다는 얘기를 하려다가 주춤하고 말았다. 비록 돌려줄 양이라지만 그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대가로 돈까지 받았지 않은가.

"혹시 기방에서 강별감이라도 본 겐가?"

김언로의 말에 당황한 백위길은 얼떨결에 모든 것을 털어놓을 심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러하옵니다."

"그 일이라면 이제 신경쓸 것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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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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