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거여?”

아내의 ‘돌팔이 의술'과 '정당한 분노'의 교훈

등록 2004.04.27 11:47수정 2004.04.2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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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 가까이 구들장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한두 시간쯤은 마당을 오락가락 했고 또 한두 시간쯤은 산을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습니다. 열흘 가까이 죽은 듯이 구들장에 어깻죽지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어깨 부위가 찌릿찌릿하고 숨까지 턱턱 막혀왔습니다. 심한 통증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작 갈아엎은 밭고랑 사이에서 드문드문 솟아오르는 잡초 몇 가닥과 씨름을 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내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요즘 아내는 면사무소에서 무료로 강의하고 있는 침을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때마침 부항 뜨는 기기를 사왔습니다.

“조~오치, 잠깐만 기달려! 부항기 가져올게!”

부항을 떠 달라는 말에 아내는 신이 났습니다. 그러잖아도‘어디 아픈 사람 없나?'‘임상 실험’할 대상을 물색 중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던 것이었죠.

아내는, 윗통을 벗고 납작 엎드린 내 등짝 옆에 앉아 “어디야, 어느 쪽이 아퍼? 이쪽, 저쪽?” 해가며 신나게 부항을 떴습니다. 부항을 뜨고 나서 이번에는 쑥 뜸까지 놓았습니다. 내 등짝을 실험대 삼아 지지고 볶아댔습니다.


“맥이나 혈 자리, 뭐 그런 거 없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놓아도 되는 겨?“
“걱정 말어. 사실 침이 더 효과가 있는데….”
“침은 절대불가여!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절대로 안돼! 침 배운지가 이제 한달 밖에 안됐잖어….”

아내의 의술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었습니다. 침은 절대로 맞지 않겠다고 대못을 박아 놓자 이번에는 허리 쪽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럼 허리에 한방 놔줄까?”
“됐어, 됐구먼! 인저 고만 허자.”

그렇게 아내의 의기양양한 '의술'로 왼쪽 어깨가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그 날 저녁 잠들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헌데 다음날 새벽, 산행을 나서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갑자기 가슴이 턱하니 막혀 왔습니다.

왼쪽 어깨는 멀쩡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어깻죽지가 빠져나갈 듯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어깻죽지에서 가슴으로 총알이 관통한 듯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어깻죽지의 고통이 점점 가중되자 이번에는 ‘바람 먹은 어금니’까지 덩달아 고통을 선사했습니다. 구들장 신세를 오래 지다보니 허리도 쑤셔왔고 온몸 구석구석에서 난리를 쳐댔습니다.

거저 배운 의술을 기분 좋게 써먹겠다고 나섰다가 생사람 잡은 꼴이 돼버린 아내는 기가 팍 죽어 있었습니다.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병원을 유도했습니다.

“병원에 가 봐야 되는 거 아녀…?”
“아직은 견딜만 허니께 병원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라구.”

고통에 못 이겨 방바닥을 박박 기어다닐 정도가 아니면 절대로 약이나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남편, 그걸 신조처럼 삼고 있는 고집불통 남편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병원 얘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주일 내내 고통을 품고 있었습니다. 품고 있다가 견디지 못하면 고통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고통과 '맞짱'을 떠보겠다는 심사로 열일 제쳐놓고 고통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고통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짐짓 도사처럼 턱하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통을 분리시켜 보겠다며 명상에 잠겨보기도 하고 희한한 기공자세로 숨고르기도 해보았습니다. 별의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신통치 않았습니다. 명상이나 기공자세를 취할 때마다 고통을 떠나 보냈다 싶었으나 잠시잠깐, 그때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고통은 어깨 부위로 여지없이 찾아왔습니다.

어깨의 통증은 단순히 아내의 잘못 뜬 부항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누적되어 온 그 어떤 통증의 원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돈벌이를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던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고 암내 풍기는 우리 집 ‘야옹이’에게 밤낮 없이 정신 사납게 달려들었던 동네 수컷 고양이들에게 돌팔매질을 했던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청소년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도 통증의 원인은 있을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패 주겠다고 샌드백을 두들겼고 또 누군가를 향해 주먹질을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군대에서는 살의를 품고 총검을 무지막지하게 휘둘렀던 것도 또 다른 통증의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부드럽지 못하면 몸 또한 부드럽지 않게 작용할 것입니다. 몸이 부드럽지 않으면 근육이 뭉치게 될 것이고 뭉친 근육은 언젠가는 통증을 몰고 올 것입니다. 결국 이런 통증들이 약해진 어깨 부위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어깨 통증과 저만치 거리를 두고 내 자신을 들어다 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째 되던 날 고통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기에 아내의 뜨거운 물수건과 어깨 주무르기(아내는 ‘경락 마사지’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과연 경락을 제대로 짚었을까 의문입니다)도 한 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면 소재지에 찬거리를 사러 나갔던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차를 누가 들이받았어.”
“언제 어디서! 괜찮아?!"

“아니, 나는 괜찮아, 우리 차가 좀 찌그러져서 그렇지"
“에이 난 또, 얼마나 찌그러졌는디?”

“트렁크가 조금….”
“트렁크 열어봐서 열리고 닫히면 그냥 와.”
“안 열리니까 문제지.”

우리 차를 둘러보니 그리 크게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아내 말대로 문제는 트렁크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색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단지 트렁크만 열리게 고쳐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트럭 아저씨’는 가만히 있는데 함께 따라온 ‘트럭 아저씨’의 동생이라는 사람이 나섰습니다.

“고쳐 가지고 우리한테 찾아 와요, 그럼 돈을 내줄 테니까.”
“정비소도 가까운데 같이 가서 고칩시다. 아저씨덜 집도 모르고요.”
“찾아오면 돈을 준다니까요.”

트럭 아저씨의 동생이라는 사람은 영화 속에 나오는 '조폭'처럼 인상이 험악했습니다. 이른바 짧은 스포츠형 ‘깍두기 머리’에 몸무게가 100kg 가까워 보이는 ‘덩치’였습니다. 말투가 시비조였습니다. 아마 ‘트럭 아저씨’ 생각에 우리가 터무니없이 돈을 요구할까봐 조폭처럼 생긴 동생을 불러들여 기를 팍 죽이려 했던 모양입니다.

“도색을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트렁크를 갈아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찌그러져도 상관없으니 열리게만 해달라는데,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녀요?”
“너무 하기는 뭘 너무해, 이 아저씨 참 이상하네. 돈을 준다니까, 자꾸 이러지 맙시다. 내가 성질이 더러워서 사람 패고 감옥 갔다온 놈이니께.”

적반하장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딴엔 소싯적에 한 성깔 한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으니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습니다.

“당신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거여?”
“이 양반이 지금 한판 뜨자는 거여 뭐여!”

사내가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었습니다. 힘없어 보이는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은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떼기로 아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나는 조폭들처럼 온갖 살벌한 욕설을 쏟아 부어가며 아주 드세게 나갔습니다.

드세게 나가자 살기등등 했던 사내의 기가 한풀 꺾였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중간에서 죽어라 말리지 않았다면 피 터지게 치고 받고 싸웠을 것입니다. 나보다 열 살쯤 아래로 보이는 그 사내와 주먹질을 했다면 분명 내가 더 많이 얻어터졌을 것입니다.

우리 차는 어떻게 됐냐고요? 고쳤지요. 조폭 닮은 사내는 제 풀에 못 이겨 검은 승용차를 타고 떠났고 나는 ‘트럭 아저씨’와 함께 평소 알고 지내는 근처 정비소에 찾아갔습니다. 우리 차는 거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정비소 아저씨의 망치질로 고쳤습니다. 찌그러진 흔적 때문에 보기가 좀 그렇지 트렁크 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조폭 닮은 사내’와 드잡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쓸데없이 고집을 피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한 고집 때문에 피를 볼 뻔했습니다.

조폭 닮은 그 사내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던 그 날 저녁부터 나는 또다시 어깨 부위의 통증으로 며칠을 더 고생해야 했습니다. 결국 내가 스스로 규정지어놓은 '정당한 분노'가 내게 고통으로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고통은 언제 어느 때고 찾아옵니다. 몸이 아니면 마음자리로 기어들어 옵니다. 내가 행한 만큼 아주 정확하게 찾아 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그 어떤 것에 고통을 준 만큼 그 고통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인가에 가한 만큼 나를 짓누릅니다.

화를 내면 언젠가는 고통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화를 냅니다. 분노합니다. 분노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고 스스로 규정지어 놓고 분노합니다. 그 분노로 인해 찾아드는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 고통은 나한테만 머물지 않습니다. 전염병처럼 내 가족에서 이웃으로 번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고통에서 온전히 자유로와 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좀더 적게 화를 내고 좀더 많은 기쁨을 누리며 살고자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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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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