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주노동자의 죽음, 그후...

대구 고 후세인씨 20일째 장례 못 지내고 29일 송환

등록 2004.04.28 11:09수정 2004.04.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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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 후세인씨의 영정을 방글라데시의 동료 이주노동자 한명이 지키고 있다.

고 후세인씨의 영정을 방글라데시의 동료 이주노동자 한명이 지키고 있다. ⓒ 평화뉴스

대구시 서구 가톨릭대학병원 영안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카이사르 후세인(32)의 빈소가 마련된 지 20일이 지났다. 지난 1999년 3월 한국에 온 후세인은 지난 4월 9일 저녁 8시 30분경 갑작스런 심장통증으로 쓰러져 그 날 바로 숨을 거두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한‘급성심근경색’으로 진단이 났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부인과 아들을 방글라데시에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온 지 5년. 후세인은 대구 성서공단의 한 침구류 제조 공장에서 창고 정리와 물품 포장 일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지만 이미 체류기간인 3년을 훌쩍 넘겨 지난 2002년부터는 불법체류자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작업장은 먼지와 솜털이 날리는 열악한 환경이었고, 먼지를 제거하는 집진기나 환풍기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2003년 11월부터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강제추방 단속으로 이주노동자 인력이 부족해져 2-3명이 해야할 일을 혼자서 감당하며 하루 14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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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뉴스

그도 정부의 단속에 걸릴까 두려워 공장에서만 지냈고 고향에 있는 가족과 빚 때문에 새벽 2시까지 이어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측은 후세인의 임금을 미루기 일쑤였다.

가슴 통증으로 쓰러질 당시 그의 임금은 5개월(2003년 5월, 10월, 2004년 1, 2, 3월)이나 밀린 상태였고 같은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은 회사측에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단체로 작업 거부에 들어갔다.

방글라데시에서 후세인과 함께 한국으로 온 어느 20대 이주노동자는 “힘들어도 내색 않고 언제나 형처럼 든든했던 동료가 갑자기 숨을 거둬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말하며 안일한 회사측의 태도에 대해 “이 문제가 빨리 해결이 됐으면 좋겠지만 죽은 자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항의를 과연 들어주겠냐”며 답답해했다.

현재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이들은 “임금을 받지 못해 눈물을 흘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성서공단 지역노조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40만 명인데, 이들 중 체류기간을 넘긴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14만에 달한다”라고 밝혔다.


보통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법적으로 3년만 한국에 머물 수 있다. 한국말을 익히고 일에 적응하는데 1, 2년을 보내고 나면 숙련공으로 일을 하는 건 1년 정도. 그렇게 3년이 지나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다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불법으로라도 한국에 남으려 하고, 사업주도 3D업종으로 불리는 작업장에서 적은 임금으로 숙련된 노동자를 쓸 수 있어 이주노동자를 계속 고용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관계는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로 체결되는 것이 보통이고, 상습적으로 3-4달을 고용하고 임금을 미루다가 해고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 나이와 이름을 무시한 채 반말을 사용하는 등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주노동자들은 강제단속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손가락이 잘려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항의 한 번 못하고 묵묵히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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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뉴스

이미 후세인이 숨지기 전부터 성서공단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불만 표출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후세인이 일하던 회사에서는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들까지도 임금체불에 잇따라 항의했다.

후세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같은 작업장의 이주노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이들과 함께 일한 한국인 노동자들도 임금체불 문제를 내놓고 전면 작업 거부에 나섰다. 결국 회사는 지난 21일 밀린 임금을 모두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후세인에 대한 퇴직금과 장례비 정산 등에 합의하고 작업장 근무시간, 환경개선 등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네 번에 걸친 협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서면 합의는 보지 못했다. 성서공단노조 이주노동자 사업부 김헌주씨는 27일 오후에 있었던 네번째 협상 후 “회사측에서는 경제적인 부분이 걸려 있어 확답하기 곤란하다고 하고 있어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하지만 이미 구두로 협상하겠다고 확약한 상태이므로 28일 오후에 다시 만나 서면약속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이미 후세인의 죽음이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의한 산업재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언제쯤 보상금이 지급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노동자들은 후세인의 빈소를 지키는 동료 이주노동자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작업장으로 복귀했다.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복귀해서 일은 하고 있지만 동료가 죽은 사업장으로 돌아가기 부담스럽다”며 새로운 사업장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도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작업장에 지장이 없는 한 그렇게 하겠다”는 단서가 붙어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아직 확실히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후세인의 시신은 29일 12시 사업장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간단한 추모식을 치르고 쓸쓸하게 송환된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5년을 보내고 결국 싸늘하게 변해 고국으로 돌아가는 고 카이사르 후세인. 그의 죽음은 단순히 이주노동자 '한 명'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나라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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