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17

공자라고 불러도 되나요? (5)

등록 2004.04.28 11:35수정 2004.04.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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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문에는 죽여야 할 놈이 그 놈 하나가 아니야. 지금까지 왜문에서 우리 선무곡에게 저지른 죄과를 생각하면 한둘을 죽여가지고는 양에 차지 않지."
"……?"

"소화타가 남의로부터 의술을 배우는 조건이 유대문과 왜문을 말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며?"
"네. 그렇게 들었어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남의가 오죽 증오스러웠으면 아예 남김 없이 말살해 달라고 했겠느냐? 왜문은 그런 놈들이다. 강자한테는 비굴할 정도로 아양을 떨지만 조금만 약한 구석을 보이면 바로 파고드는 아주 얍삽한 놈들이지. 그래서 이 할애비가 좋은 생각을 해둔 게 있다."
"무슨 생각이요?"

"허허! 녀석, 아직은 몰라도 된다. 어쨌거나 죽을죄를 져놓고도 기껏 통석(痛惜)의 념(念)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때우려는 놈들을 다스릴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는 것만 알아둬라."

일타홍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기에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고,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다. 그날, 이 할애비는 선조들의 영령 앞에서 당당하게 고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왜문에 의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

"허허! 녀석, 궁금해 하지 마라. 네가 제세활빈단의 군사가 아니라 선무곡주라 할지라도 절대 가르쳐 줄 수 없으니. 허허허!"
"할아버지!"


"녀석,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어. 자, 할애빈 이만 간다. 다음에 또 보자."
"히잉! 할아버지 벌써 가시게요? 안 돼요, 가지 마세요. 소녀가 얼른 밥 지어드릴 터이니 진지라도 잡숫고 가세요."

"허허! 녀석, 이 나이쯤 되면 배가 별로 안 고픈 법이다. 그러니 애 쓸 필요 없어. 자, 이만 간다."


어느새 화담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지난 밤 잠자리에 들 무렵 나타나서는 밤새 선무곡은 물론 전 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니 또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치잇! 이렇게 일찍 가실 거면 미리 말씀이라도 하시지. 오랜만에 뵈었으니 따뜻한 밥이라도 지어드리려고 했는데. 칫! 전에도 그러시더니 또 그러시네. 히잉! 조금만 더 있다 가시지."

일타홍의 눈에는 아쉬움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냐, 할아버진 바람이야. 때론 비가 되기도 하고, 구름도 되실 거야. 지금껏 그러셨듯 앞으로도 그러셔야 해. 그래야 선무곡이 좋아진다고 하셨으니까 그러셔야 해."

선무곡의 앞날을 위해 일생을 바친 조부가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일타홍에게서는 자부심과 더불어 자긍심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때 누군가의 전음이 있었다.

"군사! 금면십호 보고 드립니다."
"어찌 되었나요?"

"지시하셨던 대로 모든 준비를 갖췄습니다. 이제 명만 내리시면 즉각 놈들의 모가지를 딸 것입니다."
"좋아요! 마지막으로 단주의 확인을 받을 것이니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세요."
"존명!"

무림천자성에서 조잡재를 쳐죽여야 한다면서 이를 갈던 금면십호의 전음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사라진 것이다.

'선무곡의 영령이시여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제가 죽어 지옥에 간다 하더라도 선한 곡도들이 더 이상 악인들에 의하여 휘둘리지 않도록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일타홍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한 기원을 올렸다. 잠시 후 그녀는 서찰을 쓰고 있었다.

<은애(隱愛)하는 마랑(馬郞)께

소녀 마랑과 헤어진 후 그리움에 매일 눈물짓고 있다는 걸 아시나요? 공사 다망하셔서 소녀 생각 따위는 안 하시는 건가요?

마랑의 서찰 받아본지가 얼마라 오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마음 변하신 것이 아니라면 제발 소녀에게 서찰이라도 보내주셔요. < 중략 >

소녀, 마랑께서 돌아오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날을 위해 부덕(婦德)을 쌓고 있으니 어서 돌아오셔서 소녀를 기쁘게 해주셔요. 그렇게 해주실 거지요?

당신의 홍(紅) 올림 >


누가 봐도 사랑하는 정인들간에 오가는 서찰이었다. 그렇지만 일타홍은 극비문서를 다루듯 밀납(蜜蠟)으로 겉을 단단히 봉한 후 다향루의 늙은 하인 우노(禹老)를 불렀다.

잠시 후 다루 뒷문에서 말 한 필이 나갔고, 그것은 무림천자성이 있는 무한을 향하여 곧장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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