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경
오늘 족두리풀을 보니 면사포 대신 족두리 쓰고 결혼을 했던 7년전의 결혼식 날에 있었던 해프닝이 떠오른다. 지금은 수더분한 시골 아저씨로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남편의 전직은 토탈 웨딩업체의 경영자였다.
1000여 쌍이나 되는 커플의 결혼식을 주선했지만 정작 자신은 노총각이었던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7년전 이맘때였다.
맞선을 보고 나와 남편이 대충 눈이 맞고 나서부터는 결혼식 준비는 신부인 내가 신경 쓸 사이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혼수면 혼수,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사항은 모두 신랑 측에서 알아서 하고 있었다. 결혼식에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어서 편하기는 했지만 모든 여자들의 환상과 꿈의 결정체인 웨딩드레스까지 남편의 손에 맡길 수는 없었다.
"회사에 드레스는 백 벌 정도는 있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걸로 입어야지. 몇 일 있으면 또 몇 벌 들어오니까 그 중에서 하나 골라 입으면 될 거야."
하지만 막상 새 드레스가 왔다고 입어보러 오라는 날에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 갔을 때는 노총각 사장이 장가간다고 직원들이 배려를 해주면서도 놀려대는 통에 쑥스럽고 더 눈치가 보여서 드레스를 입어보고 고르기가 더 어려웠다.
그 날 저녁, 제대로 드레스도 못 고르고 결혼식을 하게 생겼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남편이 당장 회사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직원들이 다 퇴근한 밤에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당시 유행하는 웨딩드레스를 죄다 입어보면서 영화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 흉내를 실컷 낼 수 있었다.
영화 배우가 아닌 여자가 웨딩드레스로 마음껏 패션쇼를 해보는 특권은 오직 신랑 잘 만난 덕에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쉬운 건 그 날 미처 사진을 찍어 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촬영기사까지 퇴근시킨 것은 일생의 실수였다. 결혼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찜해 놓고 돌아오는 내 기분은 여자들이라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집 앞에 나를 내려주기 전에 부탁한 말을 거절하지 못한 탓에 나는 결혼식 날에는 그날 입어 보았던 어떤 드레스도 입지 못했다.
"웨딩드레스는 이제 원 없이 입어 봤지? 야외 촬영할 때 또 웨딩드레스는 입으니까 서운하지도 않을테고. 그러니 우리 결혼식은 좀 특별하게 하자. 내가 그래도 웨딩업체 사장인데 남들보다 달라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
"결혼식은 당연히 야외에서 하고 내가 사모관대에 조랑말 타고 입장하는 전통혼례로 하는 건 어떨까? 조랑말 섭외 해놨는데."
말은 이랬지만 내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치명적인 명분이 남편한테 있었던 탓에 나는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원삼활옷을 입은 조선 시대의 신부가 되기로 합의하고 말았다.
그런 비범한 결혼식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족두리풀이 남다르게 보여질 수밖에.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