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관대 때문에 탄로난 남편의 비밀

7년전 결혼식날에 있었던 해프닝

등록 2004.04.30 09:28수정 2004.05.0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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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도리풀
족도리풀오창경
고사리와 함께 나의 봄날이 가고 있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낮에 꺾은 고사리들이 왕왕 날아다니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사리계에서 은퇴한 동네 어르신들에게 음료수 한 잔씩을 돌리고 얻은 고사리 많이 나는 곳에 대한 정보에 솔깃해 소풍가는 전날처럼 들뜬 밤을 지내고 김 여사와 나는 오늘도 고사리 찾기 원정에 나선다.


전날 비가 내려 준 탓에 땅은 포실포실한 찐 감자 같았고, 산야의 나뭇잎들은 연초록 잎들이 한결 반짝거렸다. 산에 들어서자 얼마 안 되어 내 예리한 시야에 낯익은 잎사귀 하나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바로 족두리풀이었다. 우리나라 자생화로 이름처럼 족두리 모양의 꽃이 땅 속에서 올라와 피는 특이한 꽃이었다.

모처럼 장만한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다보니 <오마이뉴스>에 주로 야생화에 대한 정보를 항상 생생하게 전해주는 제주도의 김민수 목사님이 떠올랐다. 나도 시골살이를 하면서 야생화에 대해서 남 못지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며 김 목사님의 애독자인 탓일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내가 김 목사님보다 먼저 이 족두리풀에 대한 정보를 올리게 될 것이라는 은근한 희열에 들뜨기까지 했다.

7년 전 결혼식에 대한 기억

오창경
오늘 족두리풀을 보니 면사포 대신 족두리 쓰고 결혼을 했던 7년전의 결혼식 날에 있었던 해프닝이 떠오른다. 지금은 수더분한 시골 아저씨로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남편의 전직은 토탈 웨딩업체의 경영자였다.

1000여 쌍이나 되는 커플의 결혼식을 주선했지만 정작 자신은 노총각이었던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7년전 이맘때였다.

맞선을 보고 나와 남편이 대충 눈이 맞고 나서부터는 결혼식 준비는 신부인 내가 신경 쓸 사이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혼수면 혼수,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사항은 모두 신랑 측에서 알아서 하고 있었다. 결혼식에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어서 편하기는 했지만 모든 여자들의 환상과 꿈의 결정체인 웨딩드레스까지 남편의 손에 맡길 수는 없었다.

"회사에 드레스는 백 벌 정도는 있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걸로 입어야지. 몇 일 있으면 또 몇 벌 들어오니까 그 중에서 하나 골라 입으면 될 거야."


하지만 막상 새 드레스가 왔다고 입어보러 오라는 날에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 갔을 때는 노총각 사장이 장가간다고 직원들이 배려를 해주면서도 놀려대는 통에 쑥스럽고 더 눈치가 보여서 드레스를 입어보고 고르기가 더 어려웠다.

그 날 저녁, 제대로 드레스도 못 고르고 결혼식을 하게 생겼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남편이 당장 회사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직원들이 다 퇴근한 밤에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나는 당시 유행하는 웨딩드레스를 죄다 입어보면서 영화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 흉내를 실컷 낼 수 있었다.


영화 배우가 아닌 여자가 웨딩드레스로 마음껏 패션쇼를 해보는 특권은 오직 신랑 잘 만난 덕에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쉬운 건 그 날 미처 사진을 찍어 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촬영기사까지 퇴근시킨 것은 일생의 실수였다. 결혼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찜해 놓고 돌아오는 내 기분은 여자들이라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집 앞에 나를 내려주기 전에 부탁한 말을 거절하지 못한 탓에 나는 결혼식 날에는 그날 입어 보았던 어떤 드레스도 입지 못했다.

"웨딩드레스는 이제 원 없이 입어 봤지? 야외 촬영할 때 또 웨딩드레스는 입으니까 서운하지도 않을테고. 그러니 우리 결혼식은 좀 특별하게 하자. 내가 그래도 웨딩업체 사장인데 남들보다 달라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
"결혼식은 당연히 야외에서 하고 내가 사모관대에 조랑말 타고 입장하는 전통혼례로 하는 건 어떨까? 조랑말 섭외 해놨는데."

말은 이랬지만 내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치명적인 명분이 남편한테 있었던 탓에 나는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원삼활옷을 입은 조선 시대의 신부가 되기로 합의하고 말았다.

그런 비범한 결혼식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족두리풀이 남다르게 보여질 수밖에.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다.

7년 전 우리 결혼식 날로 비디오를 되감기를 해보면 하필이면 비가 와서 결혼식은 야외에서 하지 못했고 당연히 조랑말도 등장할 수 없었다. 대신 건장한 남편의 후배 4명이 기마 모양을 만들어 신랑이 타고 입장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보통 결혼식보다 길었던 전통 혼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너무 긴장해서 많이 떨었던 기억 만큼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는데 전통 혼례를 원했던 남편의 속셈이 드러나는 해프닝이 벌어져 하객들이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으니….

식이 끝나고 하객들 향해 돌아서 있을 때였다. 의례적으로 터트리는 폭죽이 초례상에 켜 놓은 촛불로 인해 터지면서 불꽃이 솟았는데 하필이면 남편의 뒤통수에 옮겨 붙고 말았다. 그 바람에 남편이 머리에 쓰고 있던 사모(紗帽)가 벗겨지면서 두피가 훤히 보이는 속 알머리가 부족한 신랑의 비밀이 공개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남편의 속 알머리는 그 당시보다 훨씬 평수가 넓어지고 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되었지만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개의치 않기에 남편도 27살부터 한 움큼씩 빠졌던 머리카락으로 인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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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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