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시설 수용 70대 치매노인 '폭행 의혹'

은평구 'ㅇ시설', 김모 노인 전치 6주 중상

등록 2004.04.30 18:39수정 2004.04.3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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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시설이란...

2005년 7월까지 신고시설 설비 기준을 제대로 갖춰 신고시설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보건복지부에 신고한 시설을 말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ㅇ시설'은 부랑인 수용 시설로 신고된 조건부시설로 신고 당시의 수용 인원은 92명이다.
조건부신고복지시설(이하 조건부시설)의 부당한 인권침해 사례가 연이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30일 또다른 조건부시설에서 70대 노인이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아래 시설공대위)는 30일 오전 11시 실업극복국민재단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30일 발생한 은평구 조건부신고복지시설인 'ㅇ시설' 수용자 김아무개(69)씨의 시설 내 폭행 여부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참혹한 사진·비디오 테이프 공개, 참석자들 "아연실색"

a 염형국 변호사가 피해자의 상황과 사건개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염형국 변호사가 피해자의 상황과 사건개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철용

기자회견에서 인천여성의전화 배임숙일 회장은 "최근 ㅇ시설 수용자의 폭행과 관련해 제보를 받고 해당 단체와 환자의 상태, 진술 등을 확인한 결과, 이 시설이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동물처럼 사육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점을 발견했다"며 "진상규명을 통해 탈 시설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이며 시설공대위 변호인단으로 활동하는 염형국 변호사의 사건 개요와 문제점 발표가 이어졌다. 염 변호사는 사건 개요에 앞서 피해자의 가족이 촬영한 피해자 김씨의 최초 입원 당시 사진과 상흔을 입은 뒤의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과 비디오 테이프에서 보여진 김씨의 얼굴은 왼쪽 부분이 대부분 검게 멍이 들어 있었다. 양팔은 물론이고 가슴과 옆구리 등도 심하게 타박상을 입었고 대퇴부의 뒷부분도 검게 멍이 든 상태였다. 진단 결과, 온 몸에 타박상과 갈비뼈 6대가 손상되는 부상으로 인해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다고 엄 변호사는 말했다.

피해자 김씨는 전남 함평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하던 중 1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나타나 가족들에 의해 지난달 28일 ㅇ시설에 입소했다. 이틀 뒤인 30일 오후, 가족들은 시설 측으로부터 "아버지가 보라매병원에 있으니 빨리 가라"는 말을 듣고 '적응을 못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김씨는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갈비뼈도 6대나 부러진 상태였다. 응급실 의사는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부러질 수 있느냐? 한두 군데도 아니고 단순히 넘어진 것만으로 이렇게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가족들은 함평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7시간 동안 김씨가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으며, 화장실도 혼자 다닐 수 있었고, 말도 곧잘 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어 그런 김씨가 입소 이틀만에 이 지경이 된 것은 시설 내에서 폭행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난 10일 서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ㅇ시설 피해자 방문 면담조사, "시설 내 폭행 있었다" 결론


a 피해자의 상처를 촬영한 사진들

피해자의 상처를 촬영한 사진들 ⓒ 이철용

시설공대위는 지난 3일 김씨 가족의 제보를 받고 곧바로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이들은 지난 14일 기자와 동행해 ㅇ시설을 방문, 시설장 박아무개 목사와 면담을 가졌다. 산 중턱에 위치한 ㅇ시설의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 앞에서 경증 정신지체장애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출입자들을 통제했으며, 출입자는 모두 CCTV를 통해 사택 거실 모니터로 24시간 감시받고 있었다.

시설측은 현장을 찾은 시설공대위측에 폭행 사실을 전면 부정했다. 김씨의 상태는 ㅇ시설에 입소하기 전부터 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이에 시설공대위는 "시설측의 말이 사실이라면, 입소 다음날인 29일 김씨가 건강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갈비뼈가 6대나 부러지고 온 몸에 멍이 든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가족들은 또 "입소 전 (김씨에게) 속옷을 갈아 입혔는데 병원에서 확인한 결과 (김씨의) 속옷은 시설 측이 지급한 것이었다"며 "치매 환자라 혼자 속옷을 갈아입지 못하는데, 이미 상처가 난 상태였다면, 왜 속옷을 갈아 입힐 때 발견되지 않았나"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 장에는 피해자의 둘째 아들이 직접 참석해 가족의 입장을 대변했다. 아들 김씨는 "시설 측의 주장처럼 입소 전에 다친 상처였다면 어떻게 그 몸으로 7∼8시간 차를 타고 서울에 올 수 있었겠는가"라며 "육안으로 보더라도 아버지는 좋은 상태였고, 화장실도 여러 번 혼자 다녀올 수 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아들 김씨는 또 "그러던 아버지가 30일에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가슴 한 가운데는 파이프 자국과 같은 상처가 나 있었으며 양팔, 허벅지 등에 심한 멍도 생겼다"며 "아마 누군가가 양팔을 잡은 상태에서 폭행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석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도 아들 김씨는 "아버지가 치매 증세가 있긴 했지만,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응급실에서 2일, 중환자실에서 5일을 지내며 병원 의사로부터 타박상으로 인해 신장, 장기 등이 손상돼 사망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시설 측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상태로 어떻게 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아들 김씨는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어머니이다. 한 달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시설 측은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금전적 피해보상 보다 시설장의 사과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설공대위, 사건의 근본 원인은 행정기관의 관리감독 부재

a 현장에서 공개된 피해자 영상

현장에서 공개된 피해자 영상 ⓒ 이철용

시설공대위측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사건은 관할 행정기관의 관리 감독 부재가 불러온 예고된 사건으로, 그동안 관할 행정기관은 시설을 '위험하고 귀찮은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좋은 수단으로만 생각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우연적, 일회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폐쇄형 복지시설이라면 언제든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 '미신고 복지시설 관리종합대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 생활자들의 외부와의 소통 권리마저 부정하는 일부 미신고 시설에 '처벌유예와 반합법' 지위를 부여한 이 지침을 무기로, 국가는 불법상태의 복지시설에 '조건부 합법'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해 마땅히 해야할 감독 책임을 방기했다는 것.

시설공대위는 △시설 측은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고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적극 나설 것 △경찰은 불성실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정부는 미신고 시설 양성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인권침해 개연성을 언제나 안고 있는 대규모 폐쇄형 시설을 소규모 개방형 시설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지난 10일 고소장이 제출된 이 사건에 대해 서부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양측에 출석요구서를 발송했으나, 구체적인 수사는 아직 진행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시설 측 관계자는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설 내에서 폭행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구체적인 시설 측 입장에 대해서는 "시설 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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