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나 한 통 오면 그걸로 충분해"

동네 할아버지들이 느끼는 어버이날

등록 2004.05.08 12:23수정 2004.05.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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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인 오늘(8일) 대구 곳곳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신천둔치나 공원 등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근처에 사는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동네 노인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 신천둔치 나무 그늘이나 다리 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서로 처지가 비슷한 60, 70대의 할아버지들은 주로 이곳에 모여 각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장기나 화투로 무료함을 달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할아버지들. 이들에게 어버이날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자식위해 일한 평생 이제는 대화도 안통해... 화목하면 그걸로 충분"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사는 장아무개(69)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을 신천교 옆 공원에 나온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즘 집을 나서면 이미 할아버지 몇 분이 미리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얼마전 선거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었지만 선거가 끝난 요즘, 그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묵묵히 주고 받는다.

a 대구 신천둔치에서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들.

대구 신천둔치에서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들. ⓒ 평화뉴스

장씨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지금은 큰 아들 내외와 손주와 함께 살고 있다. 가끔은 자식들과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지만, "화목할 수만 있다면 된다"는 생각에 내색은 거의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자식들만큼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난 일제시대 태어나서 배운 것도 없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어렵게 컸어. 새마을 사업 때 겨우 돈을 좀 벌어서 지금까지 자식들도 키워낸 거야. 내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식들은 고생없이 키우려고 애썼지.”


굶어가며 평생 일해온 지난 시간을 자녀들이 잘 몰라줄 때는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에게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여느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의 두 아들 내외는 꽃도 달아주고 용돈도 준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돈보다 마음이 우선이야. 마음만 있으면 어버이날이든 아니든, 얼마든지 선물도 할 수 있고 용돈도 줄 수 있는 건데... 난 원래 어버이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평소에 자주 전화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으면 그게 좋은 거지.”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날... "특별한 하루보다 정겨운 일상이 더 소중"

수성구 수성동의 박씨 할아버지도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히 기대하는 것은 없다. 올해 62세인 박씨 할아버지는 그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딸 둘을 키웠다.

큰딸은 멀리 시집을 갔고 지금은 둘째 딸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 일할 정도로 건강한 박씨 할아버지지만, 요즘은 일이 없어 오전부터 동신교 다리 밑으로 향한다. 동네 할아버지들과 장기를 두기도 하고 약주도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딸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서 늘 미안하다는 박씨 할아버지. 경기도에 있다는 큰딸에 대해 묻자 “멀리 있어 자주 보지도 못하고, 연락도 못한다. 예부터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그런 건 원래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버이날이라고 전화라도 오면 그것만으로 좋지, 뭐”라며 속마음을 내비쳤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날. 이곳의 할아버지들은 ‘어버이날’에 하는 특별한 선물보다 평소 울리는 전화 한 통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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