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성공한 안티운동... 새 축제 선보일 것"

[현장] 마지막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8일 막내려

등록 2004.05.09 20:27수정 2004.05.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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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아듀'를 주제로 내걸고 막을 내린 6회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포스터.
'미스코리아 아듀'를 주제로 내걸고 막을 내린 6회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포스터.안티미스코리아 제공
"안티미스코리아는 한국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안티운동이다. 미인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을 바꿨고, 공중파TV의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방송을 추방했다. 안티조선운동도 아직 (성공) 못한 걸 해냈다. 내년에는 새로운 페미니즘 축제를 열겠다."

지난 99년 시작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8일 오후 5시 서울 남대문 메사 팝콘홀에서 마지막 축제를 열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와 사단법인 <문화세상 이프토피아>가 공동주최하고 여성부가 후원한 고별 대회의 주제는 '굿바이, 미스코리아! We'll Be Back'. 여성의 상품화에 반대하는 '안티미스코리아'의 영원한 정신이 더욱 미래지향적인 축제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유채지나 동국대 교수와 전문 MC 최광기씨의 사회로 4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11개 팀이 출전해 여성을 억압하는 성차별과 성폭력, 여성장애인의 인권, 혼전순결 이데올로기 등에 대해 '안티'를 걸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억압된 여성들의 욕망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배인순씨 축하공연 "한 가정보다는 세상과 결혼하라"

여기에 자전소설 <30년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으로 화제를 모았던 가수 배인순씨를 비롯해 4인조 아줌마 록밴드 '능수누리', 스타 안무가 홍영주씨와 댄스팀 '아이기스' 등이 꾸민 축하공연도 객석을 뜨겁게 달궜다. 여성 정치인 권익보호 및 지원을 위해 지난해 3월 출범한 '여성정치인 경호본부'의 고은광순, 이유명호씨 등이 나선 <법보다 밥이 아름다워> 역시 눈길을 끌었다.

배인순씨가 마지막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격려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배인순씨가 마지막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격려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오마이뉴스 신미희
특히 98년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의 이혼 등 여러 아픔을 딛고 가수 활동을 재개한 펄시스터즈 출신의 배씨는 3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젊은 참가자들과 호흡을 이뤘다. 33년만에 열광의 무대에 섰다고 밝힌 배씨는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해 영광이다,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다"면서 "너무 고맙다, 여러분의 사랑이 있으면 얼마든 해낼 것 같다"고 말했다.

55살의 나이에도 당당한 매너로 젊은 관객을 매료시킨 배씨는 신곡 <늦어서 미안해요>와 옛 인기곡 <커피 한잔>을 부른 뒤 앵콜송 <님아>를 연달아 열창했다. 유채지나 교수는 "한 가정보다는 이제 세상과 결혼하라"는 말로 페미니스트 가수로 거듭난 배씨의 재기를 지원했다.


주인공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총 대신 꽃으로 평화를 호소하며 군사주의 문화의 폭력성을 고발한 예비역 거부자, 가수 이효리씨 춤으로 남성다움의 편견에 도전한 '2004 남자 이효리'도 큰 갈채를 받았다. 여성의 육체가 아닌 19살 남성의 몸으로 이효리씨 섹시 댄스를 색다르게 재현한 정현민군은 600여명의 관객을 열광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여성장애인 차별 다룬 경남여성장애인연대 대상 수상


이날 '웃자상'은 여성의 오르가슴과 자위행위를 담백하고도 솔직하게 표현한 토크쇼 <그녀들의 방>으로 큰 호응을 얻은 '대한여성오르가슴찾기운동본부'의 이연희·조항주씨가 차지했다. 대한여성오르가슴찾기운동본부는 두 사람이 운영하는 여성들을 위한 성인 사이트 '팍시러브넷'이 내건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뒤집자상'은 그야말로 공연장을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무대를 압도한 '남자 이효리' 정현민군에게 주어졌다. '놀자상'은 물질적·심리적·성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여성의 고통을 소리와 무용으로 표현한 댄스 퍼포먼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를 선보인 'All Or Nothing'팀이 받았다. 이 팀은 한성대 무용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됐다.

'공로상'은 대학 시절 소속 밴드와 함께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 나오게 된 인연으로 1회부터 이번까지 빠지지 않고 출전한 '이다'에게 돌아갔다. 올해는 <하이&굿바이-마이 트라우마>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들고 또다시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는 어릴 적 외상이나 충격을 뜻하는 말이다. <하이&굿바이-마이 트라우마>는 여자들이 자신에 대한 긍정과 자매들의 위안을 통해 마음의 옹이, 기억의 상흔 등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을 연출했다.

마지막 대상인 '안티미스코리아상'은 여성장애인 인권문제를 재조명한 연극 <살고 싶었다>를 공연한 경남여성장애인연대에게 돌아갔다. 장애인 연기자 3명이 직접 출연한 <살고 싶었다>는 2002년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으로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을 벌이다 사망한 고 최옥란 열사의 삶을 다뤘다.

"여성으로서 자신감 얻었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만난 아줌마VJ

▲ '아줌마VJ' 김순일(오른쪽), 박신일씨.
ⓒ오마이뉴스 신미희
한바탕 신나게 웃고 춤추고 손뼉치는 페스티벌 현장을 누비는 아줌마 VJ 두 명. 젊은 취재진이 대부분인 행사장에서 아줌마 VJ들은 4시간 내내 6㎜카메라를 들고 종횡무진했다.

독립 영상작가인 김순일씨와 박진용씨가 그 주인공. 김씨는 60세를 넘어섰고 박씨는 48세. 각각 12년과 15년차에 접어든 고참 VJ이다.

지난해 (재)시민방송에서 공모한 '시민이 만드는 영상'에 <누에>라는 다큐멘터리를 공동 출품, 우수상을 받으면서 시민 VJ로 활동하게 됐다. 김씨는 MBC의 인터넷방송인 '아이엠뉴스' 시민기자로도 뛰고 있다.

평소 페미니스트나 여성주의라는 표현을 자주 접해보지 못했던 이들은 "안티미스코리아가 뭔지도 모르고 왔다가 너무 놀랐다"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취재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 나 자신에게 더욱 당당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티 군바리, 안티 몸짱, 안티 간통, 안티 전쟁 등 아이디어 쏟아져

이날 행사에서는 6년간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탄생과 발자취, 그리고 안티미스코리아를 함께 해온 이들의 모습을 담은 세 편의 영상물도 상영됐다. 각계 인사들이 보내는 축하 영상메시지에 '마쵸들에게 한마디'도 이어졌다. 또 안티미스코리아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 '안티 군바리', '안티 몸짱', '안티 간통', '안티 전쟁', '안티 섹스얼리티', '안티 너희들만의 평화', '안티 성균관' 등을 벌이자는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무대를 장식한 순서는 그동안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이끌어온 격려위원단이 벌인 '굿바이 미스코리아, 고별행진'. "못생긴 여자들이 안티미스코리아 한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오늘 만큼은 색다른 차림을 했다"며 멋지게 차려입은 격려위원들이 무대에 올라 미스코리아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엄을순(이프 발행인)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추진위원장은 "6년전 이맘 때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는 책 홍보에 대해 생각하다가 여성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엄 위원장은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 끈질기게 싸운 결과 2002년부터는 공중파 3사가 모두 미스코리아 중계방송을 포기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했다. 엄 위원장은 "미흡하나마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내년부터는 또다른 불합리하고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그 무엇을 잡아서 뿌리뽑힐 때까지 신명나게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티미스코리아를 이끈 사람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격려위원단이 '굿바이 미스코리아, 고별행진'을 하고 있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격려위원단이 '굿바이 미스코리아, 고별행진'을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신미희
그간 안티미스코리아를 이끈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여성학자, 예술인, 언론인 등 여성주의자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올해 대회 격려위원을 보면 김신명숙(<이프> 편집인), 김효선(<여성신문> 발행인), 류숙렬(방송위원회 방송위원), 변상욱(CBS 편성부장), 서명숙(전 <시사저널> 편집장·정치평론가), 이숙경('줌마네' 대표), 임혜숙(마산MBC PD), 조선희(전 <씨네21> 편집장·소설가), 권인숙(명지대 교수) 등과 남성으로는 권혁범(대전대 정치학과 교수), 홍석천(텔런트) 등이 있다.

1회와 2회에서 사회를 봤던 유채지나 교수는 마지막 대회 사회자로 유종의 미를 거뒀고, 최광기씨는 3회부터 6회까지 진행을 도맡았다. 개그우먼 김미화, 탤런트 홍석천, 임혜숙 마산MBC PD 등도 사회자로 나선 이들이다.

안티미스코리아가 페스티벌이라는 축제행사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여성 문화인들이 큰 몫을 했다. 6회에 이르는 대회를 모두 총연출한 이영란 경희대 예술학부 교수는 산증인 중 한 사람이다.

맨가슴과 열정만 있었던 초기, 어눌했던 진행조차 예뻤다는 이 교수는 "극장이 터져 나갈 듯했던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그저 같이 이런 짓, 이런 소릴 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같이 울고 웃고 뒤집어졌던 진정한 치유와 축제의 현장이었다"고 안티미스코리아를 평했다.

박옥희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이사를 비롯 이이효재(여성학자), 정현백(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이혜경(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장필화(이화여대 대학원장), 현경(유니온신학대 교수), 오한숙희(여성학자), 고은광순(대한여한의사협회 회장), 이유명호(한의사), 김선주(<한겨레> 논설주간), 김은실(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박영숙(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박예랑(방송작가), 박인혜(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상임대표), 윤정숙(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장성자(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등 46명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이중에는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권해효(탤런트),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등의 여성주의 지지 남성들도 눈에 띈다.

2002년 미스코리아 중계방송 폐지, 2004년 수영복 공개심사 폐지
안티미스코리아 6년의 자취와 성과

▲ '여성정치인 경호본부'팀이 호주제 철폐를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신미희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1999년 5월 16일 문화일보 홀에서 첫 대회를 열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미스코리아 대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 이 행사는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의 성 상품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반대하는 여성운동계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난 것뿐 아니라, 신명나는 축제문화로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화제를 낳았다.

첫 대회의 주제는 'If you are free...'.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자체는 물론 여성들의 미적 기준이 되다시피한 '34-23-34'라는 몸매 사이즈에 딴지를 걸었다. 2000년 두번째 대회의 주제는 'If you are free size'. 신체 규격화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 이때부터 여성들이 아줌마, 아가씨, 할머니라는 단어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축제의 장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직업의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를 내건 2001년 세번째 대회부터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영역으로 축제의 관심을 돌린다. 남자 간호사, 여성 버스 운전기사, 유아교육 전공 남학생 등이 참여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드러내는 여성주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열린 네번째 대회의 주제는 '운동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그동안 '운동'과 '운동장'에서 소외됐던 여성들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2003년 다섯번째 대회의 구호는 반전과 평화. 미국의 이라크 침략 등 전쟁을 반대하면서 여성, 어린이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공포에 더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이같이 여성들이 느끼는 문제점을 당시의 시대적 이슈와 함께 담아내 큰 호응을 받았다. 또 안티미스코리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난 사람들도 눈에 띈다.

동성애 커밍아웃(고백)으로 냉대를 받던 홍석천씨의 경우 2001년 3회 대회에서 사회자로 기용돼 방송활동 복귀에 큰 도움을 받았다. 섹스비디오 파문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수 백지영씨도 지난해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통해 여성주의 시각을 가진 당당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행사에 참석한 배인순씨도 같은 맥락이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의 성과로 무엇보다 공중파 방송에서 미스코리아대회를 추방한 것을 꼽을 수 있다. 1957년 시작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최고 기준으로 간주됐던 미스코리아대회는 2002년 공중파 3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로써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진정한 여성축제로서 변모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2001년 3회 대회에는 미스코리아 수상자들이 직접 행사장에 참석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미스코리아 대회의 수영복 공개심사가 폐지되는 성과도 거뒀다. 안티문화 확산과 안티운동의 대중화를 촉발시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99년 첫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 '안티'는 1위 인터넷 검색어로 올랐고, 각종 안티 커뮤니티의 등장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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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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