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가면 전통 막걸리가 있다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 가천할매 막걸리집에 들리다

등록 2004.05.12 08:12수정 2004.05.12 11:24
0
원고료로 응원
내가 젊었을 땐 주악(酒樂)이 일치된 시대였다. 지금처럼 술을 마시다가 흥이 나면 노래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리에서 젓가락만 두들기면 되었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노래 한 번 부르려면 상대방이 쥐고 있는 마이크를 막무가내로 뺏는 일 따위는 없었다.

“노래야, 나오너라. 궁자가작작.”


누군가가 이렇게 운을 띄우면 주변에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노래가 곧바로 튀어나왔다. 일단 주악에 신명이 나기 시작하면 젓가락 장단이 자진모리 지나 휘모리로 바뀌고, 어깨가 점점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80년대 한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해타산 빠른 지금의 아내들이야 '돈 안 되는 노래 따위 말고, 돈 되는 걸 줘 봐라' 하겠지만 그 시대의 순박한 아내들은 그렇지 않았다.

술에 취해 자정을 넘겨 귀가하는 남편이 거의 동물 성대에 가까운 목소리로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 본 순간/ 거칠어진 손 마디가 안타까웠소…”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비록 입이 십리 밖으로 삐져나온 얼굴일망정 대문을 따주는 거다. 그리고 후렴처럼 한 마디를 내뱉는 걸 잊지 않는다.

"흥, 어째 집 구석은 안 잊어버리고 잘도 찾아왔수."

각설하고, 술자리에서 젓가락 장단으로 신명을 끌고가던 주악을 마치기 전에 반드시 불러야 하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막걸리, 막걸리,우리 나라, 술술술. 삼천리 강산에 우리 나라 술술술”이란 노가바(노래 가사 바꾸어 부르기)이다.


막걸리는 우리 나라 전통 술이다. 마구 걸렀다 해서 막걸리요, 술 빛깔이 흐리다 해서 탁주라고도 하며, 농사 지을 때 먹는 술이라고 해서 농주라고도 불린다. 또한 집에서 담는 술이라 해서 가양주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술, 막걸리는 1909년 일제가 자가 양조를 금지하는 주세법을 공포하면서부터 가정에서 몰래 담아먹는 이른 바 밀주의 길을 걷는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선명하다. 난 깨나 부지런한 아이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토굴로 된 닭장 문을 열고 닭들에게 모이를 주면 꼴을 베어오고, 그 후엔 부엌에서 밥 짓는 할머니를 도와 불을 땠다.

그리고 학교가 파하고 나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오고 저녁 때면 다시 할머니의 부엌 일을 도왔다. 우리 할머니도 역시 농사 철이면 누룩을 빚고, 고두밥을 쪄서 밀주를 담그셨다.

시루에 고두밥을 찌는데, 시루와 솥 사이에 김이 새지 않도록 쌀가루를 이겨서 하얀 시루삔을 두른다. 그런 다음 아궁이에 불을 때서 차츰 열을 가열하면 시루삔 사이로 가느다란 물이 마치 눈물처럼 주르륵 흘러 내린다. 막걸리 노가바는 아마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동네 아이들 여럿이서 한 아이를 놀려먹다가 마침내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면 아이들은 일제히 부르는 노래를 불렀다.

“운다. 찐다. 술밥 찐다. 너만 먹냐? 나 좀 주라."

당시 밀주를 감시하던 담당 공무원을 산감(山監)이라 했다. 그들이 한 번 뜨면 동네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산감은 밀주만 단속하지 않았다. 밀주와 소나무가 어떻게 업무적으로 연관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소나무 벌채까지 단속했다. 그런 산감에게 걸리는 날이면 그 집은 벌금으로 인해 살림이 거덜나다시피 했다. 사정이 그러한지라, 어쩌다 우연히 동구 밖에서 얼굴이 희고 멀쓱한 사람을 발견하는 아이들은 "걸음아,날 살려라!" 뛰어서 동네로 들어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산감이 나타났다.”

그러면 갓난아기 젖을 먹이던 아줌마뿐만 아니라, 밭에서 일하던 농부, 옆 집으로 마실갔던 사람 모두 급하게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는 벌채한 소나무 가지와 밀주를 담근 술동이를 감춘다. 여간 난리법석이 아니다. 그래도 산감에게 걸리는 한두 집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 집은 몇날 며칠 동안 거의 초상집 분위기를 방불케 한다.

막걸리가 밀주라는 오명을 벗은 것은 1990년대 주류도매 면허 개방 이후였다. 그동안 양조장에서 재래식 누룩을 사용하던 전통적 양조 방법 대신 일본식 개량 누룩을 쓰고, 밀가루를 주원료로 해서 막걸리를 빚어온 것이다. 그렇게 만든 막걸리는 신맛이 강하고 시금털털한 데다 트림이 나고 냄새마저 지독해서 점점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남해군 남면 가천리  속칭 밥무덤이 있는 골목 풍경
남해군 남면 가천리 속칭 밥무덤이 있는 골목 풍경안병기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에 가면 간혹 막걸리를 빚어 파는 집이 있다. 지난달 말 남해 팸 투어 이튿날 가천 마을에 들렀다. 지난 1월 말 가천 마을 갯바위에서 서포 김만중 기념 사업회 김성철 회장이 따라주던 막걸리 맛이 생각나 입안에는 벌써 침이 고여있었다. 투어를 나온 사람들 모두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생겼다는 가천 암수바위 앞에 어슬렁 거리며 나타날 때쯤 난 슬그머니 가천할매 막걸리 집으로 들어갔다.

막거리 맛이 제법 시원하고 감칠 맛이 있었다. 이렇게 전통적인 양조방식으로 막걸리를 빚는다면 얼마든지 막걸리의 시장 경쟁력이 살아나리라.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가천할매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천마을에 와서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 그냥 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은 모양이다.

가천할매 막걸리 집 주인이신 조막심 할머니(76)는 일제 때부터 막걸리를 빚어 오셨다는데, 본격적으로 빚기 시작한 것은 4년 쯤 됐다고. 살짝 산감 이야기를 물어봤다.

"할머니, 산감한테 혼난 적 없어요?"
"왜 없어요? 산감이 오면 담근 술 감추려고 함지박을 이고, 지게에 지고 해서 논둑으로 달려가곤 했지."

그 시절을 더듬는 할머니의 눈빛이 아슴해진다. 할머니는 같이 간 남해군 문화사랑회 회원들이 단골이라고 반기며 생새우무침 두 그릇을 서비스 안주로 내놓으셨다. 한 잔을 마시니 갈증이 풀리고, 두 잔을 마시니 오관이 열리며 석 잔을 마시니 시 박목월의 시 <기계 장날>이 떠오른다.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큰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 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안 그런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혀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 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기계는 포항에 있는 지역 이름.


가천 마을은 언제 바라봐도 정답다. 너무 커서 사람을 압도하지 않으며, 비스듬히 누워 응봉산과 설흘산에 어깨를 기대고 있어 정답기만 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3. 3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