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섬 처녀', 덴마크 왕세자비 되다

'21세기판 신데렐라' 도널드슨, 프레데릭 왕세자와 14일 결혼

등록 2004.05.12 12:57수정 2004.05.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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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버전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지금 덴마크에서 재현되고 있다. 5월 14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호주출신의 '섬 처녀' 메리 도널드슨이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것.

도널드슨이 섬 출신이어서 '섬 처녀'라고 부르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가 프레데릭 왕세자를 만날 때까지 시드니의 한 부동산 회사에서 마케팅직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서민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미디어가 붙여준 별명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4개국에서 왕실을 유지하고 있는데 덴마크왕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족가문이다. 그러나 몇몇 작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왕실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없다.

시드니올림픽과 인터넷이 맺어준 사랑

호주 잡지 <뉴 아이디어>와 인터뷰한 도널드슨
호주 잡지 <뉴 아이디어>와 인터뷰한 도널드슨
두 사람은 시드니올림픽이 개최된 2000년 9월에 처음 만났다. 요트선수인 프레데릭 왕세자가 덴마크 올림픽대표팀의 일원으로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하던 중, 한 선술집(pub)에서 도널드슨을 우연히 만난 것. 덴마크 신문 <폴리티켄>은 이를 두고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썼다.

프레데릭 왕세자는 도널드슨의 아름다운 용모와 호주여성 특유의 거침없고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즉석에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한 평범한 선수인 줄만 알았던 도널드슨은 호주를 처음 방문하는 프레데릭에게 시드니의 명소들을 구경시켰다.

서로 마음이 이끌린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 신분을 밝혔고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약속했다. 올림픽이 끝나자 그들은 아쉬운 작별을 해야했고, 전통을 중시하는 왕실의 연애답지 않게 두 사람은 인터넷으로 교제를 이어갔다.

도널드슨은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큐피드의 화살이 우리 두 사람의 가슴을 한순간에 관통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전화 통화와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우리의 공통관심사가 같다는 것을 확인했고 오랜 망설임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라고 언론에 말했다.


그 당시 도널드슨의 나이가 스물 여덟 살이었는데, 두 사람은 인터넷 채팅뿐만 아니라 서로의 사진을 이메일로 전송하고 좋아하는 음악파일을 주고받으면서 21세기의 연인다운 교제를 이어갔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우린 한순간의 좋은 만남으로 끝났을 것이다.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를 넘나드는, 그것도 왕세자와 부동산회사 직원간의 사랑을 계속 이어간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도널드슨은 그동안의 속내를 언론에 털어놓았다.

두 사람의 교제를 지켜보는 호주사람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서민과의 결혼이 금지됐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서민출신과 결혼하는 왕족이 많아졌지만, 선술집에서 만난 여성을 선뜻 왕세자비로 선택한 프레데릭 왕세자에 대해서 호주 사람들은 한동안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호주에서조차 시골취급 받는 타스마니아 섬 출신의 노처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프레데릭 왕세자의 처신을 올림픽축제의 기분에 들떠서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거나 바람둥이 왕족의 무분별한 소행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서울에 있던 신부아버지, 한지에 결혼허가편지 써보내

그러나 프레데릭 왕세자의 프로포즈는 순수하고 정중했다. 장인이 될 존 도널드슨에게 정식으로 결혼 허락을 요청하는 전통양식의 편지를 보냈고, 자신의 어머니인 마가렛 덴마크 여왕과, 이미 결혼한 동생 헨릭 왕자와도 진지하게 상의했다.

프레데릭으로부터 편지를 받을 당시, 존 도널드슨은 한국의 한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와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도널드슨은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호주의 주간지 <뉴 아이디어>에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밝혔다. 다음은 도널드슨 교수의 회고 요약.

"서울에서 프레데릭의 편지를 받고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특히 그가 왕가의 전통에 따라 예스러운 편지를 보내주어 더욱 기뻤다. 나는 미래의 덴마크 왕에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서 한국에서 제일 좋은 종이를 수소문했다.

마침내 불교의 한 수도승으로부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제품 한지를 얻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다 '결혼을 허락한다'는 말과 '내 딸을 위해서 좋은 남편 되어달라'고 썼다.

'특히 1997년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잃은 메리가 그 충격으로 오랫동안 앓았고, 인생관이 바뀔 정도로 크게 상심했는데 자네를 만나면서 다시 생기를 얻었으니, 메리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기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만난 프레데릭은 왕세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한 사위였다. 그는 메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타스마니아 섬을 방문해서 머무는 동안 그곳 주민들이 그가 왕세자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소박하게 처신했다."


프레데릭 왕세자를 한동안 의심했던 호주 사람들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가 유럽에서도 소문난 신사일 뿐만 아니라 요트 국가대표선수가 될 정도로 건실한 생활을 하는 특급 신랑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레데릭 왕세자가 영화배우 못지 않은 미남이어서 '금상첨화'라는 반응이다.

호주야 그렇다고 하지만, 더 큰 고비는 덴마크 왕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호주 서민 출신의 도널드슨을 왕세자비로 선뜻 받아들일 것인가? 덴마크 일간지 <폴리티켄>의 보도에 의하면 약간의 고비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02년 4월에 도널드슨을 극비리에 만난 마가렛 여왕과 헨릭 왕자는 그 만남의 확인을 요청하는 언론에 침묵도 아닌 부정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다가 2003년 9월, 두 사람의 약혼을 정식으로 발표하면서 왕실 대변인을 통해 "덴마크 왕실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녀를 왕세자비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왕실과는 달리 덴마크 국민들은 처음부터 도널드슨을 뜨겁게 환영했다. 다만 호주와 덴마크의 타블로이드지가 보도한 후일담에 의하면, 왕족 출신 며느리를 원했던 마가렛 여왕의 재고요청이 있었고, 사교계의 호사가들이 한동안 도널드슨과 사귀었던 남자친구 얘기로 입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3년 동안 이어진 왕세자비 수업

인터넷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두 사람은 본격적인 교제에 들어갔고, 도널드슨은 2001년 초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왕세자비 수업에 들어갔다. 그녀는 지금까지 3년 동안 코펜하겐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덴마크의 언어와 역사를 공부해왔다.

그녀의 왕실수업을 위해 특별지도팀이 구성될 정도로 왕세자비 수업은 철저했다. "일반상식과 왕실의 교양은 기본이고, 화장 패션 식사에티켓 등을 익히는 것도 까다롭기 이를 데 없었다"고 도널드슨은 투덜거렸다.

그때마다 프레데릭 왕세자가 직접 나서서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가서 가르쳤고, 승마 요트 등의 스포츠를 즐기게 해주어 외국생활과 왕실수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었다고 한다.

사실 호주만큼 영국이나 유럽 왕실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짝사랑을 하면서 말이다.

호주는 아직도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을 국가수반(head of state)으로 받드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그것 때문에 늘 논란이 많지만 호주 국민의 절대다수가 영국계인 앵글로-켈트족 출신이라서 영국왕실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왕족사위 맞은 호주, 왕실콤플렉스에서 벗어날까

'여왕의 생일날'이 국경일인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 빼고는 없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왕실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보도하는 나라가 호주다.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가 살았을 때는 그녀의 사진을 한 주 걸러 한번씩 잡지의 표지에 실었을 정도니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혹자는 이를 두고 "식민지출신국가 특유의 왕실콤플렉스"라고 비아냥거린다. "여왕의 생일날만 되면 속옷까지 새것으로 사서 입는 할머니들이 돌아가셔야 호주가 입헌군주제국가에서 공화국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빈정거리는 호주 젊은이들도 있다.

지난 1999년 '호주를 공화국으로의 전환할 것인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입헌군주제 지지율이 54.7%나 됐다. 존 하워드 총리도 대표적인 입헌군주제 지지자다. 최근에는 입헌군주제 지지율이 그 당시보다 더 높아졌다고 하니 호주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향수가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만 하다.

그런 측면에서 도널드슨이 덴마크의 왕세자비가 되는 것은 호주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호주의 종주국인 영국보다 전통이 더 오래된 왕실의 프레데릭 왕세자가 '호주의 사위'가 되고 머지 않은 장래에 메리 도널드슨이 덴마크의 왕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의 규모나 국제적 위상에서 인구 530만명에 불과한 덴마크를 영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왕족 사위를 맞는 호주로서는 어깨가 으쓱해질 만한 일이다. 호주 국민이 왕실의 사위나 며느리가 된 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코펜하겐은 지금 축제열기에 싸여

덴마크 왕실의 결혼식을 보도하기 위해서 대거 코펜하겐으로 파견된 호주 기자들의 보도에 의하면, 코펜하겐은 지금 결혼식 축제열기에 싸여있다고 한다. 연일 프레데릭-도널드슨 결혼 축하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

지난 5월 8일, 코펜하겐 실내축구장에서 열린 <덴마크 로열 록 콘서트>에는 4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호주 브리스베인 출신의 그룹 <파우더핑거>의 공연을 즐겼다. 호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파우더핑거>의 공연은 도널드슨이 <파우더핑거>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에 마련된 행사였다.

한편 호주 일간지 <데일리 텔리그라프>는 "도널드슨이 공연장에서 체면도 차리지 않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 결혼식 준비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음을 엿보게 했다"고 전했다.

5월 9일에는 마가렛 여왕의 동생 베네딕트 공주가 마련한 근위대의 마장마술시범이 있었고, 다음날인 5월 10일엔 이번 결혼식 예비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덴마크와 호주 팀간의 요트경기가 코펜하겐 하버에서 열렸다.

덴마크 팀의 주장으로 올림픽에 세 번이나 출전한 경력이 있는 프레데릭 왕세자가 나섰고 호주 팀 선수 중에는 놀랍게도 도널드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1983년 아메리카 컵 요트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는 존 버트란드와 한 팀을 이루어 타임키퍼로 활약했다.

결국 '복싱 캥거루 깃발'을 매단 호주 팀이 프레데릭 왕세자가 이끈 덴마크 팀을 2-1로 이겼다. 그날 코펜하겐 하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거의 일방적으로 호주 팀을 응원해서 프레데릭-도널드슨이 만든 두 나라간의 돈독한 우정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사랑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

이렇듯 덴마크에서의 열기는 높지만 도널드슨의 친정국가인 호주에서의 열기는 찰스-다이애나의 결혼식 때처럼 높지 않다. 그 결혼식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 만큼 요란했지만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코펜하겐 시 당국은 "약 25만 명의 군중이 프레데릭 왕세자의 결혼식 행렬을 거리에서 지켜볼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왕실지지율이 92%나 되는 덴마크 국민들이 외국의 조용한 반응과는 달리 '세기의 결혼식'으로 여기면서 들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호주 출신의 왕세자비를 맞으면서 요즘 '호주 배우기'에 나섰다고 한다. 각종 호주관련 행사장을 찾아가고, 도널드슨의 고향인 타스마니아 섬을 방문하여 타스마니아는 때아닌 관광특수를 누리고 있다.

타스마니아로 가는 길을 안내한 지도 등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연일 '로열 웨딩' 특집을 싣고 있는 <폴리티켄>의 기자가 도널드슨에게 왕세자비로서의 장래 희망을 물었다.

"자선기관의 일원으로 일할 계획이다. 프레데릭도 동의한 일이지만, 그건 모든 왕실과 부유한 사람들이 꼭 해야할 의무다. 사랑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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