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예가의 꿈

붓으로 만드는 세계 서예작가 김두한씨

등록 2004.05.19 08:49수정 2004.05.2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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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두한 서예작가

김두한 서예작가 ⓒ 권윤영

"집중력과 인내력이 바로 서예가 가진 매력입니다. 글씨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잡념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연약한 털로 된 붓이란 도구를 통해서 자연현상과 마음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건물 4층에 위치한 우전 서실(대전 유천동)에 오르는 길, 짙은 묵향이 코끝에 느껴졌다. 실외가 내려다보이는 트인 공간에서 장산(藏山) 김두한(49) 작가는 글씨를 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대전시전, 충남도전 초대작가전 출품,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승가대학에도 출강하는 서예인생 30년이 넘는 중견작가다.

"먹은 검은색 하나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물의 농도에 따라 오묘한 색을 내죠. 먹처럼 맑은 것도 없어요. 가을날 이른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바로 먹일 수도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흰 종이 위에 글씨를 쓴다는 건 너무 큰 즐거움이랍니다."

고교시절, 서예동아리로 출발한 그의 서예인생은 직장생활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예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던 그는 결국 직장생활도 그만 두고 서실을 열어 지금껏 22년째 서실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서예를 하는데 담임선생님이 '너 글씨 참 잘 쓴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칭찬 한마디 때문에 일반학생보다 서예에 대한 애정이 더 많은 학생이 되었죠. 물론 직업으로써 서예는 힘들기에 고민, 망설임도 많았고 좋은 직장이 있을 때는 갈등을 겪기도 했어요. 이게 내 길이다 생각하고 가시밭길을 가는 것과 같답니다."

서실 수강생은 10여 명 남짓. 특히 요즘은 서예를 배우는 인구가 예전 같지 않다. 전에는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 서예를 선택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레저스포츠를 선호하기 때문. 이는 인내심, 자제력이 필요한 서예보다는 빠른 결과를 내고 쉬운 것을 추구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지금에야 전국의 대학교에 서예학과가 다섯 군데나 개설됐지만 그 시절에는 서예학과가 없어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서예 공부를 하지 못했다. 원광대에 서예학과가 신설되자마자 그는 마흔 살의 나이로 만학도가 되어 서예 공부를 했고 대학원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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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그는 지금도 반복적인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고난이도의 획이 나오기까지 많은 연습을 하는 것. 때로는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획이 나올까 하는 것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씨(善書)를 쓸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죠. 내 부족함이 커나갈 때마다, 진보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희열감은 물질의 풍요에서 오는 희열감과 같을 때가 많아요. 그런 기쁨 때문에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고요."

사람에도 착하거나 악한 사람이 있듯 글씨에도 착한 글씨가 있고 추악한 글씨가 있다. 그는 좋은 글씨(善書)를 쓰고자 한다. 나중에 보면 질릴 수가 있는 것이 잘 쓴 글씨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고 영원한 진리처럼 질리지 않는 것이 바로 좋은 글씨다. 무작정 글자를 쓴다고 좋은 글씨를 쓰는 건 아니다. 문학, 역사, 철학이 글씨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선지 그의 화실 벽에는 다양한 책들이 빼곡하다.

그는 22년간 서실을 하면서 많은 작가들을 배출해 왔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장애를 갖고 있던 한 중년 남성. 올해 대전대 서예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서실에 다니던 사람의 소개로 그 장애인을 알게 됐어요. 산재로 척추를 다쳐서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서예를 통해 재활의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의지가 강하고 목표의식이 확고해 좋은 결과가 있었죠.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어요."

그는 좋은 글씨를 써서 좋은 서예가(善書者)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바랄게 없다. 돈과 명예보다 작가로서 수준을 올리는데 가치를 두고 사는 인생. 첫 개인전은 공부를 축적한 6년 후에나 계획하고 있다. 그에게는 전시회를 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시회에서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김 작가는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유인즉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붓을 잡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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