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에 동해에 배치될 예정인 이지스함www.fas.org
국방비 대폭 증대도 경계의 대상
또 한 가지 우려되는 대목은 주한미군 일부 감축에 따른 이른바 '안보공백론'이 한국의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표방해온 노무현 정부는 이를 위해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을 추진해왔고, 지난해 전체 예산증가율이 2.1% 였던 반면 국방비는 약 9% 증액했다.
이러한 흐름에 더해 "주한미군의 감축을 자주국방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향후 국방비 증액 논리의 핵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병력을 감축하는 대신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정보력을 강화시키는 주한미군 재편과 맞물려 한미연합전력이 오히려 대폭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로 나아갈 것이다. 이는 시대적 과제로 일컬어지는 군사적 적대 관계의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역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의 육군 감축을 한국군이 메워야 한다는 논리는 기형적인 한국군의 구조를 고착화시킬 우려도 있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육군의 감축과 해공군력의 강화를 통한 육·해·공군의 균형 발전 및 정보 전력의 강화는 한국군 현대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한국군의 현대화 방향은 지상군은 줄이고 해공군력 및 정보력은 강화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한미군 재편과 충돌하게 된다.
미군 감축, 한반도 군축의 기회로
이와 같이 일부 미군 감축을 '군사력'으로 메우려는 조짐은 새로운 형태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군사적 준비태세의 강화를 가져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야기할 우려가 대단히 큰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주한미군의 감축을 남-북-미 3자, 혹은 남북한 사이의 군축 협상을 본격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3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을 뿐더러 핵 문제를 포함한 '대타협'의 기초를 마련하고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을 앞당길 수 있는 호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군사력 변형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3만 명이 넘는 주한미군을 운영, 유지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기 때문에 한반도 군축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군사력 운용의 부담을 덜 수 있다.
10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도 군축을 통해 '호전적인 국가'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고, 군축으로 확보한 인적·물적 자원을 경제재건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남한 역시 3자간의 군축을 통해 대미 의존을 줄여 자주성을 증진시킬 수 있고, 추가적인 경제 부담없이 혹은 국방비를 삭감하면서도 육군 위주의 군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대단히 역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군축이 진정한 자주국방의 기초를 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보공백론'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보수적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한나라당을 통해 이른바 '안보공백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한국 안보의 '보루'처럼 여겨져 온 주한미군이 비록 일부지만 빠져나간다는 것이 당혹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안보공백론'은 허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미국이 한반도 안팎에 추가적으로 군사력을 증강시키지 않더라도 이미 한미동맹은 '과도한 수준'의 대북 억제력을 확보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을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남한은 지난 20년 동안 북한보다 3∼4배 많은 군사비를 투입했다. 그리고 최근 남한의 군사비는 북한의 GDP에 육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아직 북한보다 군사적인 열세에 있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거나, 정부의 무능함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은 군사적으로 큰 위협이다. 남한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는 없더라도 유사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리고 누구에 의한 것이든, 전쟁을 막는 것이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외부 충격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우리 시민사회와 정부의 성숙함과 변화된 역량을 보여줄 기회이다. 이 기회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비롯한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때로는 군축이 안보를 증진시킨다"는 말이 상기시켜 주듯이, 미군 감축을 해묵은 과제이자 시대적인 요청인 한반도 군축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미 상호간의 군사력이 '한반도판 상호확증파괴'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더 많은 무기는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안보 딜레마'를 확대재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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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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