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화순군 북면 방리 일명 정지동의 아름다운 모습. 여기에서 모내기 하다 점심도 자주 먹었답니다.김규환
또 하나의 숙제, 잔디 씨 훑어오기
봄이 무르익으면 또 한 가지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5월 중순쯤 선생님께서는 주말을 이용하여 꽤 시간을 허비하는 숙제를 내주셨다. 바로 잔디 씨를 훑어오라는 거다. 요즘에야 아무 공원 잔디밭에 가서 쭉쭉 훑으면 금방 해치울 하찮은 일이지만 어릴 적 우리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놀기에 바쁘기도 했거니와 방과 후 집으로 직행을 해야 했고, 도착하자마자 집안에서 할 몫이 정해져 있어 짬을 낼 겨를이 없었다. 잔디 씨가 여물기 전에 벌써 여러 번 꼴로 베어간 것도 한 가지 이유다. 논두렁 밭두렁엔 바랭이, 쑥만 무성할 뿐 잔디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친구 몇 명과 함께 ‘삐비’ 뽑아 먹었던 묘지에 가보지만 그 시절 우리 동네 묏동엔 요즘 나오는 키 작고 균일한 잔디가 심어져 있지 않았다. 밭가에 나는 고르지 않는 풀이 듬성듬성 심어졌을 뿐이었다.
뽑아오라는 분량도 만만치가 않았다. 편지 봉투에 가득 채워오라니 그 많은 것을 어느 세월에 다 채워간단 말인가. 토요일 오후 학생들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야, 병문아 어디 좋은 데 없냐? 잔디 씨 딸 데 말야.”
“정지동(들 한 가운데에 있는 정씨들 묏동)에 있을 지도 몰라.”
“야 거기는 폴새 국민학생들이 다 따가부렀는디….”
“그래, 글면 우리 집에까지 걸어갈래?”
“가다보면 있을라나?”
“글도 한 귀탱이는 남아 있지 않겠냐?”
“카만 있어봐봐. 거기 어디냐 원리마을 못 가서 새로 쓴 묏동이 몇 개 보이던디.”
맘에 드는 녀석들끼리만 근 20리 길을 걷기로 했다. 초등학교 동창 여학생도 몇 명 끼었다.
“야 규환아, 우리 꺼도 해줄 거지?”
“있으면 해줘야지.”
“병문아 너는 누구 꺼부터 할테여?”
“몰라. 그건 그렇고 영임아 나 소개시켜 계집애 어찌코롬 돼가냐?”
“내가 말은 해놨응께 쬐끔만 기다려봐.”
잔디 씨 따는 건 까마득히 잊고 남녀간 애정문제로 화제가 바뀌었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여자애들 블라우스 밖에서 연결 지점을 찾아 브래지어 고리를 주먹으로 툭툭 치기도 하고 쭈욱 늘였다가 갑자기 놔버려 사정없이 퉁기게 한다.
“야! 가만 안 둬! 워메 아픈 거.”
“아따 꼬시다.”
“이러면 정말 여자 소개 안 시켜준다.”
“알았어. 앞으로 안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