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에서 석유가 '콸콸' 쏟아졌으면...

등록 2004.05.22 03:14수정 2004.05.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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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름띠만 보면 그 땐 기분이 좋았습니다. 석유가 나올 것으로 알았으니까요.
이 기름띠만 보면 그 땐 기분이 좋았습니다. 석유가 나올 것으로 알았으니까요.김규환
출근시간에 달라진 텅 빈 거리 오히려 나에겐 호시절


국제 석유 값이 배럴(bbl은 158.9ℓ) 당 41달러를 넘어서는 초고유가 시대가 현실이 되었다. 국내 휘발유값도 1ℓ당 1440원대를 넘어섰다. 달라진 모습은 곳곳에서 보인다. 경차가 부쩍 늘었고 집에다 아예 차를 세워둬 대낮엔 주택가 주차장이 빌 틈이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하는 바람에 대중교통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덕분에 아직까지 아침마다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맡기고 아내를 태워 급히 직장까지 출근시키는 나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휴가 때나 명절 때처럼 텅 빈 서울 거리에서 한가함을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꽉 막힌 체증이 내려간 듯 하다.

거리가 뻥뻥 뚫려 평소 40분 가량 걸리던 시간이 25분대로 줄었다. 시간에 맞추기 급급하였다가 막힘이 없으니 예정시각보다 여유롭게 도착하여 모닝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도 20분 이내에 가능해 아침 공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상쾌한 기분이다.

아이들과 벌이는 아침 전쟁이 줄었으니 집을 나서는 시간이 늦춰지는데 이러다가 다시 사람들이 차를 몰고 나오면 허둥댈 것이 분명하다. 걱정이 먼저 앞선다. 습관은 언제나 사람을 쉽게 바꿔 놓고 마니 말이다.

지난 21일(금) 오전 9시 10분 경 도로교통안전공단 앞. 평소엔 무척 대기 시간이 길었던 곳입니다.
지난 21일(금) 오전 9시 10분 경 도로교통안전공단 앞. 평소엔 무척 대기 시간이 길었던 곳입니다.김규환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국민으로 산다는 것


고향이야기 하는 사람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석유 값을 들먹이다가 출퇴근, 자가용, 서울 거리를 말하였다. 오늘은 어릴 적 내 작은 소망 하나를 털어놓기 위해서다.

우린 여태 귀가 따갑도록 "밥 먹었냐?"와 함께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라는 말을 주문처럼 듣고 살아왔다. 이 말이 자주 들리면 통금을 이야기하다가 영업시간을 제한하였고 장사하는 간판 불을 끄라 하고 차량 강제 10부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또 올핸 어떤 대책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석유(石油)! 석유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 세계적인 석유소비국으로 이제는 농사를 짓든, 공장에서 일하든, 집안에서 생활하든 석유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활동은 석유로 통하는 시대라니! 석유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부자유의 세상에 있다.

어릴 적 어느 여가수가 부른 "제 7광구! 캐면 진주…"라는 노래는 내 소망이기도 했다. 전 국민에게 희망을 줬지만 사실은 박정희 정권의 사기극이었다니. 그런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제발 서민 경제가 술술 풀렸으면 좋겠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한 애국소년의 간절한 소망과 끈질긴 작업

1배럴은 이보다 적은 양일 겁니다. 예전에 어른들은 3명이서 번갈아가며 30리 길을 지게에 지고 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1배럴은 이보다 적은 양일 겁니다. 예전에 어른들은 3명이서 번갈아가며 30리 길을 지게에 지고 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김규환
빈한한 집에서 태어나 어떻게든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워 어른들 호강시키고 형제자매들 잘 살게 해보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던 그 시절 나는 밤마다 기도를 드렸다. "제발 우리 마당에서 석유가 콸콸 쏟아지게 해주세요" 하며 7년 넘게 깨어있을 때면 간절히 기원했다. 나는 애국자로서 자격을 충분히 갖춘 셈이었다.

88평 밖에 안 되는 옛 집터에 석유가 나오면 정말이지 우린 한국에서 제일 부자가 될 것이며 그러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해방되어 서울 부자 동네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어렸을 때부터 난 집을 팔고 서울로 뜰 생각을 했다.

나는 특히 비가 오는 날엔 더 소망을 구체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윗집 발동기에서 몇 방울 떨어져 비를 타고 흘러내렸을 기름띠가 무지갯빛을 띠고 마당 한구석에서 쏙쏙 솟아올라 물기가 자작자작 고여 있는 곳에 쫘악 퍼져 가면 날아갈 듯 기뻤다. 밖으로 나가 자랑할 수도 없었다. 최초 발견자가 되어 돈벼락을 맞고 싶었다.

"엄마! 엄마!"
"왜 뭔 일 났냐?"
"고거시 아니고라우. 울 마당에서 *시구 난당께요."
"그려."

그래도 어머니는 기쁜 표정을 짓지 않으셨다.

"엄마 근디 *호맹이 어딨소?"
"저기 행랑채 *칙간에 가봐라. 위에 걸려 있을 것이여."

부엌을 뛰쳐나와 변소로 갔다. 호미를 들고 쏙쏙 모래 알갱이들이 춤을 추는 토방 밑 흙을 파기 시작했다. 물은 계속 솟아올랐다. 처음엔 석유가 나오는 맥을 놓치지 않게 구멍을 작게 파 나갔다. 여전히 기름띠는 사라지지 않고 햇볕을 받아 더 선명해졌다.

'조금만 더 파 들어가면 돌 사이에서 기름이 콸콸 쏟아지겠지.'

나는 나무가지를 가운데에 꽂고 다음엔 괭이를 가져다가 주위를 넓혀갔다. 진 마당을 호미와 괭이로 헤집어 파니 끈적끈적한 죽이 되었다. 마당은 엉망진창이었고 난 흙투성이가 되었다.

'엉, 이때쯤 나와야 되는디….'

평소 집집마다 우물 파는 구경을 했던지라 마냥 힘들여 파다보면 나올 줄 알았는데… 내 기대는 물거품에 떠내려갔다. 물이 마르면 곧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아버지께 "누가 마당을 뒤집어 놓았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팠다. 그 작업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내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허망한 꿈은 비가 그치면 사라졌다. 신기루처럼. 그러나 이젠 고향 집 마당에 석유가 나오지 않아도 되니 제발 고향집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저러나 나도 벌써 두 달째 출근 때만 차를 사용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좀이 쑤셔 죽겠다. 연료첨가제라도 넣고 한번 떠나볼까. 고향 형님과 장모님께서는 언제 내려오느냐고 성화시다.

아는 분 시골집에 있는 녹슨 발동기와 석유통 그리고 지게의 일부.
아는 분 시골집에 있는 녹슨 발동기와 석유통 그리고 지게의 일부.김규환


글쓴이 註

*시구: 석유의 사투리
*호맹이: 호미의 사투리
*칙간: 측간(廁間). 변소(便所) 또는 화장실의 예스런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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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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