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는 리본을 달고,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알리는 풍선을 불고 있다이경숙
지난 21일은 경북대학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학교 곳곳에 주막이 펼쳐졌고 동아리의 흥겨운 공연, 지역민과 함께 하는 노래자랑으로 학교는 술렁이고 있었다. 그 축제 마당에서 사흘 동안 즐거운 투쟁을 펼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른바 '시간강사'들이다. 가슴에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교육환경 개선"을 선언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손에는 색색의 풍선을 들고 축제 마당을 누볐다.
시간강사! 그들의 삶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대로, 교수들과 똑같이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월 평균 임금이 56만원으로 기초적인 생활도 어려운 편이다. 더구나 일년 중 다섯 달은 한푼의 임금도 없이 긴 방학을 버텨야 하고, 해마다 3월이나 9월이 되면 보릿고개에 허덕인다. 방학 동안은 이리저리 견디지만, 막상 3월과 9월에 개강하면 이 학교 저 학교로 이동하는 엄청난 차비며 수업을 준비하기 위한 교재비, 복사비에 시달린다. 60년대나 있었다던 그 보릿고개를 2004년도에도 '시간강사'들은 여전히 겪는다.
방학마다 다음 학기 강의가 돌아올지 아닐지 노심초사한다. 학교의 연락을 기다리다 연락이 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고 두세달 동안 아무 연락이 없다면 그 학교에서 몇 년을 강의했든, 강의를 얼마나 잘 했든, 강의 준비를 마쳤든 말든 강의는 없다. 학교는 어떤 이유로 강의가 없어졌는지 전혀 설명하지도 연락하지도 않는다.
불안한 시간을 견뎌 강의를 시작해도 가르치는 일은 험난한 길이다. 요즘 중고등학교에 가면 어느 교실에나 설치되어 있는 시설이 오히려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상 시설이 갖추어진 강의실도 별로 없고, 중고등학교에는 40명도 많다고 하는 수업에 100명 수강이 예사이다.
대학이 서열화되고, 그 대학 출신이 어떤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느냐가 대학의 명예와 실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아무도 대학의 교육 환경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대학을 졸업했냐가 중요하지 그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제공하느냐는 중요치 않다. 빽빽한 수강 인원,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는 한정된 교양과목, 칠판과 백묵이 있고 의자만 잔뜩 가져다 놓으면 되는 강의실, 그러면서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만 다그치는 교육이 대학교육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