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란 바로 이런 분이 아닐까요?

[박소영의 독서 이야기- 37] 이호철의 <살아 있는 교실>

등록 2004.05.24 13:34수정 2004.05.3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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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을 둔 나는 지난 스승의 날 아들녀석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아이 편에 보냈다. 아이는 선물을 드린다는 기쁨에 가슴에 꼭 안고 한달음에 유치원으로 향했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게도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해 드리고픈 스승이 계신지 잠시 생각해 봤다.

불행하게도 내게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얼룩진 선생님들의 곤혹스런 표정만이 간간이 그려질 뿐이었다. 오로지 대학 합격을 위한 도구로 움직이던 학창시절, 교사와 학생은 지식을 주고받는 명확한 수직적 관계만이 존재했다는 추억 아닌 추억에 잠겼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교사들 스스로 '참교육'을 외치며 매서운 비판의 목소리를 모으던 1980년대 말의 열매인 듯, 인격적으로 수평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보이는 것 같다.

'이호철' 선생님만의 교육

예전에는 교훈이나 덕담 한 말씀을 들으려면 어려운 걸음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달려가 이러저러한 일들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다정한 친구'가 스승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이 소개하는 한 분 선생님을 만나보자. 이 분은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하실까.

이호철 선생님은 경북의 한 산골 초등학교 교사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분의 활동 사진들이 곳곳에 실려 있어, 아이들을 향해 활짝 웃고 계신 모습이 더할 나위 없는 친근함을 배가시킨다.


이 책에 실린 각각의 교육 활동에 대한 세세한 지침은 일선 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학부모에게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그는 '힘닿는 데까지 온몸을 바치는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설 것을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다진다.' 실제로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걸러낸, 이 선생님의 구체적인 교육 방법의 근간에는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다.


이 선생님의 반 급훈은 '참, 사랑, 땀'이다. 이 세 목록엔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들어 있어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하루에 한 아이 사랑하기'를 통해 아이들 개개인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손톱 깎아주기'를 통해 진정한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씨름하기'를 통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면서 참 마음을 통한 사랑을 확인하고 '꽃밭 가꾸기'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주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곧 땀을 흘려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노동의 경건함을 가르친다.

이호철 선생님은 하루에 한 명씩 손톱을 깎아주며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 한다.
이호철 선생님은 하루에 한 명씩 손톱을 깎아주며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 한다.
이호철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의 다른 뜻'을 염두에 둔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입시키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이들의 다른 뜻을 배우려는 이 선생님의 자세가 전제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배우는 자세로 가르치겠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 언제나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게 하겠다. 매를 들지 않겠다…. ('나의 다짐표' 중에서)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우리 밭에서, 우리 바다에서 나오는 반찬 싸오기'를 통해 바른 식습관을 유도한다. '차렷', '경례'라는 일본식 번역 대신 '차렷'은 '바로 서세요', '경례'는 '인사 나눕시다'라고 하신다.

교실에서 떠들면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고누두기와 실뜨기, 바둑두기를 가르쳐 준다. 그야말로 이호철만의 '살아 있는' 교육 실천이다.

이 책의 부제인 '교실혁명'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쉽고 정감 어린 대화체와 사진들은 '살아 있는 교실'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금방이라도 대한민국 어디에든 교사가 아이들을 업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넘쳐 날 것 같은 착각을 부르는 책이다.

살아 있는 교실

이호철 지음,
보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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