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버지께 효도합니다”

93세 아버지 모시는 71세 아들

등록 2004.05.25 09:19수정 2004.05.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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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상희(71), 천재택(93)씨.

천상희(71), 천재택(93)씨. ⓒ 권윤영

"가차운데 갔어. 올 때가 됐는데…."


올해 93세인 천재택 할아버지는 기운이 없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문 밖을 내내 쳐다보며 어딘가 나간 아들을 기다린다. 충북 옥천읍 안남면 연주리. 옥천 읍내에서도 한참을 차로 달린 끝에 당도한 시골 마을. 이곳에는 천재택(93), 천상희(71) 부자가 서로 의지한 채 살고 있다.

a "아버지를 원망 한 적은 없어요"

"아버지를 원망 한 적은 없어요" ⓒ 권윤영

할아버지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천상희씨가 집에 돌아왔다. 인근 "마을회관에 갔었다"는 그는 연로한 아버지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우지 못한다.

"아버지는 밥 먹을 때만 빼면 하루 종일 잠만 자요. 깨워서 소변도 봐드려야 하고 욕창 때문에 수시로 자리도 옮겨줘야 합니다."

노환으로 거동이 힘든 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은 그의 몫이다. 아버지의 소화를 돕기 위해 장 마사지를 해주고 3일에 한번 관장을 해준다. 아버지를 위해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식사를 차려주는 것 역시 일흔이 넘은 그가 해낸다. 귀가 어두운 아버지를 위해 큰 목소리로 말벗을 해드리기도 한다.

a "우리 아들이 최고지"

"우리 아들이 최고지" ⓒ 권윤영

그가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노환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는 17세 때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다. 아버지는 일을 할 수 없었고 집안형편은 늘 어려웠다.


생계유지가 곤란하던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막노동으로 힘들게 생활을 유지했지만 설상가상으로 17년 전 아내가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게 됐다. 막노동을 하면서 아내의 수술비와 약값을 대느라 힘들게 살아왔던 세월이 그의 얼굴빛에서 묻어났다.

지금도 약을 먹어야 하는 그의 아내는 서울 딸네 집에서 지내고 있지만 딸 역시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다. 아들은 집을 나간 후 소식도 모른 채 살아온 지 오래다.


천씨 부자의 한달 생활비는 생계비 지원 15만원, 노인연금 5만원, 장애인연금 5만원으로 총 25만원. 형편되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에 남들의 도움을 바라지는 않는다.

a 천상희씨는 소일거리로 파, 고추 등을 가꾼다.

천상희씨는 소일거리로 파, 고추 등을 가꾼다. ⓒ 권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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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힘든 건 없어요. 제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힘껏 사는 거죠. 얼마 전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이젠 병원에서도 오지 말라더군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그날까지 열심히 봉양해야죠."

이들 부자는 사람이 그리운지 대문 밖을 나서는 그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는다. 방문 앞에 앉아있던 천 할아버지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고 천상희씨는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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