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농사꾼 하문옥이라 하오. 이곳에 와서 무공을 익힌 것과 본곡의 장래를 위한 일에 차출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오. 그 답례로 제세활빈단에서 요구하는 장로를 반드시 처단할 것임을 미리 약속드리는 바이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를 종잡을 수 없어 그런지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제세활빈단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소이다. 들어주실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오."
"조건이라니? 얌마! 너 정신 나갔냐?"
"맞소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르고 감히 조건 운운해?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 혹시 죽여줄 테니 은자 내놔라 같은 말을 하면 내가 먼저 네놈의 목을 따버릴 거야. 알았어?"
누군가 타박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농사꾼 하문옥은 개의치 않고 누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건이라니?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먼저 말씀해주시오. 그래야 우리가 받아들일지 여부를 말씀드리지 않겠소?"
"본인의 조건은 이러하오."
"…!"
참으로 교묘한 언변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렸다는 것을 확인한 하문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인에게 배당된 장로를 없애고 오면 본인을 제세활빈단의 단원으로 받아달라는 것이 조건이외다."
"…!"
"나도, 나도 같은 조건을 거는 바이오. 우리 모두 제세활빈단원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어주시오. 무공이 부족하다면 여태 흘린 땀의 열 배라도 흘릴 용의가 있소. 안 그렇소?"
"크크! 물론이오. 열 배 아니라 백 배라도 흘릴 용의가 있소."
"하하! 맞소. 나도 제세활빈단원이 되고 싶소."
"이봐, 자네들만 좋은 일, 보람 있는 일을 하려고? 크크! 그렇게는 안 되지. 나도 단원으로 받아 주시오."
장내는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들이 내뱉는 말은 한결같이 임무를 완수하면 제세활빈단원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장내를 내려다보던 면구를 쓴 인물의 입이 열린 것은 대략 일다경이 지난 후였다.
"좋소이다. 여러분 모두 본단 단원이 되기를 염원한다 하였소이다. 그런데 단원이 되면 일체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오로지 본곡의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하는데 그럴 용의가 있소?"
"물론이외다. 선무곡이 무림제일방파가 되도록 하는데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소이다."
"그럼 죽을 것이 뻔한 임무를 부여할 경우에는 어찌하겠소?"
"기꺼이 죽겠소이다. 우리가 왜문의 지배를 받을 때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하신 안중근(安重根) 열사나, 백천의칙(白川義則), 하단정차(河瑞貞次) 등을 처단하신 매헌 윤봉길(尹奉吉) 의사, 그리고 유관순(柳寬順) 열사와 같이 한 목숨 바치겠소이다."
"내가 죽어 본곡이 나아진다면 기꺼이 죽겠소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를 가장 먼저 보내주시오."
또 다시 장내는 시끌벅적해졌다. 열변을 토하는 모두의 눈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열정과 충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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