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혁명가의 발자취를 만난다

비운의 아티스트, 오세은의 5월 YMCA 청개구리 콘서트

등록 2004.05.27 11:48수정 2004.05.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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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계에는 업적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뮤지션들이 많다.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한 번, 그리고 1990년대 댄스 가요 범람으로 또 한 번,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가요계가 ‘일그러진’ 탓이다.

비정상적으로 재편된 가요계 지형으로 인해 뛰어난 재능과 음악적 업적을 지닌 많은 뮤지션들이 자의반 타의반 활동을 그만두거나, 대중들에게 잊혀지거나, 언론에 외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a 오세은의 최근 모습

오세은의 최근 모습 ⓒ round

오세은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안타까운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초창기 그룹사운드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 1970년대 포크 음악과 블루스 음악을 오가며 훌륭한 곡들을 대거 만들어냈고, 1980년대 이후에는 국악과 가요의 접목을 꾀하며 음악적으로는 일정 경지를 넘어선 눈부신 성과를 이룬 인물이다.

이런 설명이 와 닿지 않는 이에게는 딕 훼밀리의 히트곡 ‘또 만나요’의 작곡가라는 설명이 직접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영애의 비공식 2집 <작은 동산>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도 신촌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팬이라면 관심 있을 부분이다.

아무튼 많은 잊혀진 뮤지션들 가운데서도, 오세은은 가장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업적은 지면에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1980년대 국악으로 전향해 보여준 성과일 것이다.

오세은은 1981년 4집 <노래하는 나그네>부터 본격적으로 국악의 악기와 가락을 가요에 도입하는 실험을 시도했고, 이후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국악의 한계를 절감한 뒤 무려 7년간의 국악 연마에 돌입했다.

마침내 돌아온 그는 1988년의 5집이자 마지막 음반이 된 <남사당>을 통해 기타-베이스-드럼-키보드-색소폰 등의 서양악기를 동원해 각설이 타령과 ‘한오백년’, ‘진도아리랑’을 연주하며 대중음악의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놀라운 혁명을 이뤄냈다.


이후 김수철 등이 기타산조를 선보이며 국악과 가요의 접목자로 언론에 보도되곤 했는데, 사실 기타를 이용한 산조의 시초이자 완성자는 오세은이다. 이 업적만으로도 오세은은 한국 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a 오세은의 기념비적 명반, <남사당>

오세은의 기념비적 명반, <남사당> ⓒ round

그러나 오세은의 음악적 성과는 단지 국악과의 접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그는 블루그래스 기타 주법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1983년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블루그래스 주법 교본까지 집필했을 정도다.


또한 ‘해바라기’에서 활동하던 미완의 여가수 한영애의 가수 데뷔의 숨은 배후 인물 역시 오세은이다. 그는 한영애의 비공식 2집 <작은 동산>과 공식적인 데뷔작 <여울목>에 참여하며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텁텁하고 끈끈한 한영애의 창법에는 오세은의 영향력이 상당부분 묻어나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오세은의 이러한 업적은 정치 사회적인 암울한 상황과 맞물리며 제대로 인정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솔로 3집의 수록곡인 ‘고아’가 사회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는 ‘황당무계’한 이유로 금지곡이 되면서 오랜 기간 칩거 생활을 해야 했고, 이후 국악에 천착하면서는 대중과의 교류가 끊기면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고만 것이다. 상업적인 음악 활동에 염증을 느낀 그가 지금과 같은 가요계 지형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 오세은이 오랜 은둔을 끝내고 팬들 앞에 돌아온다. 2003년 새롭게 문을 연 이래 수많은 포크 뮤지션들의 ‘명예의 전당’이 된 서울 YMCA 청개구리 무대를 통해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선보이는 것이다.

김의철, 문지환, 장경아 등 쟁쟁한 멤버들과 함께 하는 이 공연은 절판된 희귀 음반으로만 전해지던 오세은의 음악을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표곡인 ‘고아’와 ‘또 만나요’, ‘당신’ 뿐만 아니라 4집 이후 선보였던 기타 산조 음악과 미발표 신곡까지, 무려 17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야말로 오세은이라는 아티스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무대인 셈이다.

19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에 애착을 가진 팬들, 또한 국악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진 음악 팬들에게는 이 소리없는 고독한 혁명가의 숨겨진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공연은 5월 28일 금요일 단 하루만 있을 예정이며, 오후 7시 30분에 서울 명동 서울YWCA 1층 마루홀에서 열린다. 공연 문의는 http://www.folkfrog.com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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