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55

세상을 바꾸는 것

등록 2004.05.27 17:21수정 2004.05.2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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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포교 놈들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다고? 그것 때문에 날 부른 건가?"

옴 땡추가 밥 한 그릇을 비운 후 손톱으로 이를 쑤시며 강석배를 흘겨보았다.


"심각한 일입니다. 오승(五僧)께오선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사옵고 용인과 충주에 있던 자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런 놈들이야 언제든지 모을 수 있네…. 그리고 오승이는 자기가 자초한 일인 데다가 끝까지 신의를 지키지 않았나?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이건 제 말이 아니옵고…. 어르신의 전갈입니다."

"알고 있네!"

옴 땡추는 거나하게 트림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 '어르신'을 만나러 가겠으니 안내하게."

"예?"


강석배는 놀란 듯 눈을 치켜 떴으나 곧 옴 땡추의 날카로운 눈매에 기가 죽고 말았다.

"이 사람! 거기에 가기 전에 멀쩡하게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양새로 갈 터인데 왜 그리 소심하나! 어서 길이나 안내하게!"

"허나…."

강석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후, 강석배가 옴 땡추를 안내한 곳은 호조판서 박종경의 집이었다. 옴 땡추는 큰 소리로 하인을 불러 일렀다.

"내 호조판서의 아재비뻘 되는 사람이니 이리 나와서 맞이하시라 이르게."

하인은 옴 땡추와 강석배를 노련한 눈길로 번갈아보더니 기다려 보라는 말을 하고선 문을 닫으려 했다. 옴 땡추는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가 뛰어들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게 종경이 게 있나! 여기 아재비가 왔는데 문전박대할 참인가!"

강석배와 하인은 크게 놀란 모습으로 옴 땡추를 쳐다보았고 곧 대청마루에 박종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웬 놈인가 했더니 아재비를 사칭하는 종씨놈이구나! 어서 이리로 들어오게!"

박종경은 호탕하게 웃으며 옴 땡추를 맞이했고 강석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신수가 훤해 보이는 게 좋으신가 보오."

옴 땡추의 말에 박종경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사람아 요사이 자네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어찌 일을 그리 처리했단 말인가?"

박종경의 질책에 옴 땡추는 키득거리며 별일 아니니 걱정 말라는 여유를 보였다.

"제가 이렇게 찾아온것은…. 작은 청이 있어서이옵니다."

"청이라? 내 여러모로 자네의 덕을 많이 보는데 무슨 청인들 들어주지 않겠나?"

"실은 우포청에서 비변사의 명을 핑계삼아 뒤를 캐는 포교들이 있사옵니다."

박종경은 겨우 그런 일이냐는 듯 껄껄 웃었다.

"겨우 그런 일인가? 천하의 박충준이가 어찌 포교 따위에 휘둘리는가? 허허허…."

"어르신께서 한마디 해주시면 조용히 끝날 일을 번거롭게 처리하기는 싫어서 그렇사옵니다."

이윽고 술상이 들어오자 잠시 대화는 끊어졌다.

"금주령이 아직 풀리지 않았네만 자네를 보니 어찌 술잔을 서로 아니 나눌 수 있는가? 자, 한잔 받게나."

옴 땡추는 두 손으로 공손히 술잔을 받아 단숨에 죽 들이켰다.

"실은 청이 하나 더 있사온데…."

"무엇인가?"

"주상전하께 국고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큰돈을 해마다 새로 주조하자고 상소를 올려 주십시오. 지금은 돈이 없을 때만 그때그때 주조하는 형편이지 않습니까."

"그건 어찌 해서 그래야 되는 것인가?"

"대감께 큰 도움이 되는 일이옵니다. 사주전(私鑄錢 : 사적으로 몰래 주조하는 돈을 일컬음)을 주조할 것이옵니다."

그 말에 박종경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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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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