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산업 장기방향 얘기 못하면 집권은 꿈"

[17대, 정치신인이 이끈다⑩] 조승수 민주노동당 당선자

등록 2004.05.28 21:39수정 2004.05.2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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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수 민주노동당 울산북구 당선자.
조승수 민주노동당 울산북구 당선자.오마이뉴스 이종호

"총선 끝나고 서울 온 게, 오늘로 11번째네요."

조승수 민주노동당 당선자는 다소 피곤한 얼굴이었다. 조 당선자는 총선 이후 중앙당이 있는 서울과 자신의 지역구인 울산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길면 3∼4일 서울에 묵지만 짧으면 당일치기로 다시 울산에 내려갈 때도 많다. 당장 내일(29일)은 울산에서 남구 보궐선거를 지원하고 그 다음날엔 경상일보 주최 커플마라톤에 참여해야 하는 일정이다.

조 당선자는 민주노동당 10명 의원 중 단 둘 뿐인 지역구 의원 중 한 명. 울산에서 시의원과 구청장을 역임하며 꾸준히 지역의 터를 일궈왔다. "앞으로 지역에서 새로운 시민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다양한 영역에서 진보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조 당선자는 지역과 중앙당 활동을 병행하느라 어깨가 무겁다.

조 당선자는 "꼭 참석해야하는 일정 중심으로 움직이는데도 이동하는 시간 때문에 많이 허비하고 양쪽 다 욕을 먹는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한 의원 세비에 대해서도 "180만원도 좋은데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차이가 없다, 당이 너무 외면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조 당선자는 당의 최연소 의원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민주노동당은 의원회관의 의원실을 나이순대로 배정했는데, 이 때 조 당선자는 자연스럽게 가장 낮은 등급의 방을 배정받았다.

조 당선자는 "비례대표 선거 때 선배에 대한 예우가 있었는데, 이번 한번으로 그쳐야 할 것"이라며 당내 세대교체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당내 정파의 부정적인 영향이 심각하다, 민주노동당의 정파는 룰이 없는 1차적 관계"라며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조 당선자는 국회 산자위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그는 "실물경제와 국가산업의 장기방향에 대해서 당이 논의해본 적이 없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이 한계는 누구보다 직접 상임위 활동을 통해 중소기업에 불리한 기업관행을 깨야하는 조 당선자 스스로의 숙제다.


개원 준비에 지역구 활동, 경제공부까지 몸이 열 개라고 부족한 조 당선자는 울산에 있는 가족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집에서 안 쫓겨날까 걱정"이라는 조 당선자는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아이 생각에 걱정이 많은 보통 아빠이기도 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집앞 도로 고쳐달라는 주민들, 민주노동당 지역구 의원 길 험난"

오마이뉴스 이종호
- 보기드문 민주노동당의 지역구 당선자다. 비례대표와는 역할이 또 다를텐데, 지역구 활동은 어떻게 하나.
"민주노동당 출신이라고 해서 진보적 가치의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만 내미는 행사는 안 가지만 지역주민이나 노조를 만나 과제를 설정하고 협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지역에서 새로운 시민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다양한 영역에서 진보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일이 비례대표 곱하기 2인 셈이다."

- (보통 국회의원 후보들은) 지역공약이라는 것이 대부분 개발공약이다. 어떤 지역공약을 가지고 총선에서 승부했나.
"주민들에게 '지역개발은 시장과 구청장의 일'이라고 했다. 주민들이 머리로는 이해하는 것 같은데, 직접 만나보면 집 앞 도로가 어떻고 하는 민원문제를 호소한다. 선거 당시 홍보물에 지역개발 내용이 10줄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당의 정책공약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환경생태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고민스럽다. 자칫 반대파로부터 '낙농국가로 돌아가자는 거냐'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 민주노동당이 의석 10석을 차지했지만, 지역구 출마자들은 사실 대거 낙선했다.
"울산은 당선이 기본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91년부터 대규모 노동조합의 다양한 대중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구 출마자 대부분은 당선이 안된다고 알면서도 당의 원내진출을 위한 소총수로 희생했다. 새로운 지도부가 이름없이 노력하는 지구당 위원장과 평당원의 뜻을 투영해 당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조 당선자는 시의원과 울산 북구 구청장을 지내 현실감각이 있다는 평이다. 당시 생활이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나.
"현실감각의 경지는 아니고, 독특한 경험을 해와서 시스템을 좀 안다. 시의원, 구청장을 하면서 기업의 애로점과 산업단지 제도의 맹점, 편법 운영을 조금 경험했는데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다른 당선자 분들도 다 아실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선배에 대한 예우는 여기까지... 당내 정파 문제 바람직 안해"

오마이뉴스 이종호
- 울산의 노조라는 것이 대부분 대공장 노조 아닌가. 앞으로 산자위에서 활동하게 되면 중소기업문제를 다루게 될텐데….
"대기업 노조의 역할은 인정해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이 산별체계를 갖추지 못했는데 정규직·비정규직 나뉘다 보니 반목과 갈등이 있다. 울산 북구만 하더라도 중소기업 숫자가 훨씬 많다. 대기업 쪽도 설득을 하면서 큰 방향에서 당 정책으로 나가야죠."

- 개원 뒤 산자위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정책을 주로 다룰 계획인가.
"민주노동당이 재벌에 대해서 각을 세우고 제어한다면,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포지티브하게 나간다. 어음결제 기한을 바꾼다든지, 납품단가를 매년 깎는다든지 하는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만 바꿔줘도 문제가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공정거래법이 주의·경고 수준에 그치는데, 벌금을 대폭 상승시켜야 한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실물경제에 약하다. 국가산업정책의 장기 방향은 우리가 한번도 맞닥뜨리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이런 것을 얘기하지 못하면 집권세력이 되는 것은 꿈이다. 경제 운영에 관한 나름대로의 자기 완결논리를 분명히 가져야 한다. 저도 전문가가 아니고, 숙제이기도 하다. 학습과 고민을 하면서 더디더라도 기초적인 토대를 만들려 한다."

- 민주노동당 당선자 중 최연소다. 국회의원회관의 의원실도 제일 낮은 등급 방을 받은 것으로 안다. 민주노동당이 당은 젊은데 당선자들은 너무 어르신인 것 아닌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게 제일 낮은 등급인가?(웃음) 민감한 문제인데, 민주노동당이고 진보진영이라고 해서 선배에 대한 예우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그런 분들이 배려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배려와 예우는 한번 정도로 족하다. 앞으로도 중요한 기준으로 가져간다면 민주노동당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 젊은 만큼 당을 바라보는 시각도 젊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당이 고쳐야할 점을 꼽는다면?
"진보 가치가 빛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부정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관성에 의해 보수화되고 관료화 조짐도 나타날 수 있다. 우리도 사회의 일반 관행과 관습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새 가치와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그 자체로 보수화될 것이다. 평당원 민주주의나 직접 민주주의 도입도 새로워지려는 노력의 한 부분일 것이다."

- 최근 최고위원 선거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정파간 논쟁이 크다. 이를 고쳐야할 문화로 보나.
"저는 당내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 나를 무슨 '파'로 분류하는데, 사실 그 파에 속해있지도 않고 속하고 싶지도 않다. 내용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할 생각이다. 강령 문제가 시끄러운데, 한국적 토대에 맞는 '한국적 진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당내 정파 문제는 심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당내 정파가 없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건강한 정파는 동력일 수 있지만 (현 정파는) 제대로 된 룰이 없는 1차적 관계다. 운동 하다가 만난 것은 옛날 인연이고, 학생 때 선후배관계가 이어지면서 노선이 정리되면 사물을 보는 방식이 자유롭지 못하다."

"울산-서울 오가느라 가족에게 미안... 안 쫓겨날까 걱정"

오마이뉴스 이종호
- 서울에 오면 모텔에서 잔다고 들었는데, 있을 집은 구했나.
"조카네서 신세지려고 했는데 못 들어갔다. 조카가 취업원서 내다가 몇 군데 떨어진 모양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나 혼자 가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도 같이 온다니까 자기가 독서실로 나가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 당에 대한 불만은, 세비 180만원도 좋은데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을 모른다고 하기엔 당이 너무 외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울산의 가족들을 만날 틈도 없는 것 같다.
"구청장 하면서도 그랬는데,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안 쫓겨날까 걱정이다. 아내는 같이 운동하고 있는데 나보다 바쁠 때도 많다. 아이들은 나이가 중1, 초4 그렇게 된다. 지금은 그런대로 큰데, 예전엔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했다. 큰놈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인데….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서 다행이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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