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58

세상을 바꾸는 것

등록 2004.06.01 17:21수정 2004.06.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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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호서, 영남, 호남의 각 산간 고을에서 대동목(大同木 : 대동법에 따라 거두던 포목)중 3분의 1을 돈으로 대납할 것을 주청했고 그것이 윤허되었다 합니다. 또 흉작인 지역은 모두 돈으로 대납할 수 있다 하옵니다. 근래 들어 매년 이런 일이 반복되니 박종경 대감의 주청은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하옵니다."

강석배의 보고에 옴 땡추는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을 알았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포도청의 날파리들은 이제 더 이상 운신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래 수고했네. 아우들도 모두 가버려 적적한데 어디 가서 곡차로 회포나 풀까 하는데…."

강석배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했다.

"그러실 줄 알고 기방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준비하라 일렀습니다. 자 가시죠."

옴 땡추는 기분 좋게 강석배를 따라 기방으로 향했다.


"귀한 손님이니 거 애향이를 좀 부르게나."

강석배의 요구에 행수기생 윤옥은 왠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허허…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기분이 좋은 옴 땡추는 개의치 않으며 우선 급한 대로 윤옥이 내온 술을 한 잔 주욱 마셨다. 순간 요란하게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옴 땡추가 인상을 찡그리며 방문을 열어 보니 다름 아닌 백위길과 종사관 박교선이 드잡이를 벌이고 있었다.

"네 이놈! 한낱 포교 주제에 어찌 기방에서 기생을 끼며 술을 먹는 단 말이냐!"

"그러는 종사관께서도 역시 술을 마시며 기생을 찾지 않으셨사옵니까? 그것이 양반이 할 도리옵니까?"

"네 이놈! 그래 피장파장이라 하자! 그깟 계집하나 양보 못해 감히 내게 이런단 말인가!"

옴 땡추가 살펴보니 그 사이에서는 윤옥이 말리느라 분주한 모습이었고 백위길이 있는 방안에서 애향이의 모습이 언뜻 비쳤다.

'놈들! 계집질하느라 넋이 나갔군!'

옴 땡추는 문을 닫고서는 무시하려 했으나 때마침 딴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보게나 강별감. 이 가까이에 심지일 종사관이 살고 있지 않나?"

"그렇긴 하옵니다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린 강석배가 의아한 듯이 되묻자 옴 땡추는 히쭉 웃으며 종사관 심지일을 불러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자를 불러 무엇에 쓰시겠습니까?"

"그 자에게 시킬 일도 있거니와 돈으로도 못 얻은 백포교란 자를 한번 구슬려 보고픈 욕심에서일세. 어서 시키는 대로 하게나!"

강석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갔고 이윽고 심지일을 데려왔다. 기방에 당도한 심지일이 보니 박교선이 백위길과 싸우고 있는지라 두고 볼 수 없어 자연히 끼어 들게 되었다.

"이보게! 이 어인 일인가!"

평소 심지일과 좋은 관계가 아닌 박교선이었기에 그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사실은…."

"어허! 망측하네! 포도청의 별감이 기생을 사이에 두고 포교와 다투다니!"

때가 되었다고 판단되자 옴 땡추가 모른 척 나서 심지일을 맞이했다.

"이보게 심종사관! 오래간 만일세!"

"아니? 박선달께서는 언제 한양에 오셨사옵니까!"

옴 땡추와 심지일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백위길 또한 뜻밖의 일에 역시 당혹스러워했다.

"이거 백포교도 여기 있으니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같이 하세나!"

옴 땡추의 말에 백위길은 애향이를 한번 보더니 주섬주섬 신발을 찾아 신고선 말했다.

"죄송하오나 저는 이만 가 보겠사옵니다."

"어허! 이 사람 심기가 단단히 상했군! 그러지 말고 어서 이리 오게나!"

옴 땡추의 말에 백위길은 심지일과 박교선을 둘러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는 더 이상 불의(不義)와 타협하고 싶지 않사옵니다. 선달님께 빌린 돈은 강별감을 통해 갚을 것인즉 이제 더 이상 볼일이 없었으면 하옵니다."

말을 마친 백위길은 모두를 뒤로 한 채 허위허위 기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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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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