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를 잉어떼가 건져냈다구?"

[연극리뷰] <상사주>(극단 한양레퍼토리, 피터쉐퍼 원작, 최형인 연출)

등록 2004.06.03 14:50수정 2004.06.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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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주> 포스터
<상사주> 포스터한양레퍼토리
우리는 전설과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도 전설을 믿지 않고 더 이상 신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 역사책에 나오던 그 많은 전설과 신화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멸종된 중생대 공룡의 화석을 뒤지듯 전설과 신화의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과학이란 이름으로 측량하고 기록하고 번호 매긴다. 전설과 신화는 분해되어 사실과 거짓으로 나뉘어 재구성된다. 이제 각종 숫자와 역사적 사실만이 권위라는 이름이 부여된 역사책에 그 기록을 남긴다.


주변의 수많은 유적 안내판을 보면 숫자와 역사적 사실만이 차갑게 써 있다. 대부분의 건물 안내판에는 몇 년도에 건축되어 몇 년 후 중수, 임진왜란 혹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몇 년도에 다시 짓고 그 몇 년 후 보수했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이런 안내판, 안내원의 말을 들고 어느 누가 감동을 받겠는가. 문학적 재능(상상력)이 풍부한 안내원은 역사적 사실에 조금 살을 부칠 것이다. 관람객의 반응을 보면서 말이다.

진주성의 안내원 '한주연'은 촉석루와 의암바위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극적으로 설명한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흥미로워 하지만 일부는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다고 분개한다. 그녀는 규정에 어긋난 행동으로 인해 직장을 잃는다.

하지만 그녀를 해고한 문화재청의 '지상애'는 그녀에 호감을 느끼고 다른 직장을 추천해 준다. 이 둘은 한주연이 만든 특별한 술 '상사주'를 마시며 자신에 대해 솔직히 얘기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어 그들만의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이후 사건을 더해가며 <상사주>는 흥미로워진다.

<상사주>는 <에쿠우스>와 <아마데우스> 등으로 유명한 극작가 피터 쉐퍼의 희극 <레티스와 러비지>(Lettice and Lovage)가 원작이며 <봉숭아 꽃물>의 작가 김민숙에 의해 <상사주>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상황에 맞게 번안되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여배우 메기 스미스를 위해 피터 쉐퍼가 특별히 쓴 것으로 여배우의 연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임유영이 주인공 '한주연' 역을, '지상애' 역은 황석정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임유영은 연극 속에 살고 있는 '한주연'을 낭송조의 대사와 심각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연기하여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연출은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대표 최형인이 맡았다. 그녀는 한국연극계의 대표적인 여배우이며 연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출가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커튼과 무대 벽을 이용, 무대를 분할하여 사무실, 진주성, 한주연의 집으로 나누어 사용했고, 디스플레이장치를 이용하여 관객이 창을 바라보는 느낌을 만들어 냈다. 또한 배우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가장 편한 연기를 할 수 있게 하는 소극적인 연출로 젊은 배우들로부터 최상의 연기를 뽑아냈다.

<상사주>는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배우의 피를 물려받은 ‘한주연’과 공무원의 피를 물려받은 ‘지상애’가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관광 아이템을 구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사실과 허구,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이 어쩌면 그렇게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 것임을 보여 준다. 지금 어느 역사책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책이나 <로마인이야기>와 같은 상상력이 가미된 책들이 많이 팔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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