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한 개구리 뒷다리에 소금 '토도독 톡'

아이들 오랜만에 개구리 잡아 오랜만에 배를 채웠지

등록 2004.06.09 13:44수정 2004.06.0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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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머리를 벗겨지게 하는 여름날이었다. 개구리를 잡기 위해 동무들과 꼴을 베어 놓고 어귀에 모이기로 했다. 모꼬지는 마을 아래 당산나무 그늘에서 하기로 했다. 꼬드긴 사람이 준비해 오는 게 원칙이니 선봉에선 내가 살림살이를 마련했다.


어두컴컴한 정지 밥솥 언저리에 놓인 어머니 소관의 성냥집 한쪽과 성냥골을 챙기고 장독대 소금 독 굵은 소금 두 줌을 듬뿍 퍼서 봉지에 싼다. 얼추 됐다 싶어 가 보니 다들 벌써 와 있었다.

“왜 이리 늦었냐?”
“요것조것 준비할 것이 많더라.”
“다 챙겨왔간디야?”
“잉.”
“늦겄다. 얼렁 가자.”
“아, 글고 철사 각관냐?”
“아따매 그걸 잊고 왔다야.”
“그건 됐어야. 풀에다 끼면 된께.”

해가 긴 여름 오후 5시 아이들 발걸음은 빨라졌다. 거름기를 한껏 받아 꺼무잡잡한 벼가 흔들거린다. 콩 심어진 논둑을 조심히 몇 발짝 따라가다 냇가로 접어 들었다. 낭창낭창 가지를 늘어뜨린 느티나무나 버들가지 한 줄기 찢어 손에 쥐어 들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학익진(鶴翼陣)으로 이 잡듯 뒤져 나갔다. 몇 걸음 옮기자 키 크고 야무진 성호가 너끈한 나무 채로 풀숲을 후려쳤다.

“야~ 한 마리 잡아부렀다.”
일제히 몰려들었다.
“야~ 쫘악 뻗어부렀네!”
“어떻게 잡았냐?”
“야 이래봬도 깨구락지 잡는 도사 아니냐? 요놈들이 풀 색깔하고 같잖아. 살금살금 다가간께 논으로 도망갈라고 하잖아. 30cm 앞에다 툭 때리니까 찍소리 못하는 거야.”

한마디 추켜세웠다고 주절주절이다. 개구리는 발견 즉시 사살한다. 머리가 향하는 방향 한자 앞쪽을 무턱대고 치면 어김없이 짧은 두 앞다리까지 쭉 뻗고 기절한다. 미끈한 깨구락지를 주워 철사 대신 씨 머금은 긴 풀 하나 뽑아 홀쳐 개구리 똥구녁을 관통하여 바람 한 번 후 불어 주고 열댓 마리씩 꿰어서 갖고 다닌다.


꽤 시간이 흘러 깽번(냇가 둑)을 따라 개밥 모탱이(모퉁이)에 다다를 무렵이 되었을 때 나는 열여덟 마리의 개구리를 잡았다. 이놈들이 꼼지락꼼지락 나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냇가 돌이 나뒹굴고 있는 만남의 장소로 몰려온다.

“야! 안되겠어야~”
“뭣땜시?”
“자꾸 움직인다.”
“이리 줘봐. 이 새끼들을 뙈기를 쳐부러야 한당께!”


줄줄이 꿰어진 내 깨구락지를 받아든 병주가 한 마리씩 빼 뒷다리를 잡고 돌에 대갈박(머리의 비속어)을 쳐댔다. 기어 들어가는 “찌익~” 소리가 난다.

한명은 개구리를 지키고 냇가에 앙상하게 걸린 가지를 한 움큼씩 주워왔다. 성냥집을 돌에 감싸 성냥골을 당기니 황과 인 냄새가 확 풍겼다. 곧 불이 붙었다. 나머지는 돌로 개구리 뒷다리만 자르고 몸통 윗부분은 물에 떠내려가게 던져버린다. 교련복 같던 개구리 껍질을 벗겨내자 물갈퀴와 하얀 살에 무지개 빛이 돈다.

불이 사그라질 무렵 밖으로 잉걸을 꺼내 탈탈 털어 물기 뺀 개구리 뒷다리를 살포시 올려 소금을 흩어 뿌린다.

“타닥 톡!”
“턱!”
“앗야!”
“야 색꺄! 긍께 해섭이 너 뽀짝거리지 말라했잖아. 눈깔 팔 일 있냐?”
“엄메 뜨거운 거~”

쪼그라들면서 노릇노릇해지자 살 타는 냄새가 났다.

“잘 익었는가 묵어 보까?”
“썩을 놈!”
“쩌리 비껴봐~”

전쟁이 벌어졌다. 오래 씹다 보면 천신이 돌아오지 않기에 뼈를 빼낼 틈도 없이 손과 입만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큼하면서도 쫄깃하며 뼈가 오도독 씹혀 영양 만점이었던 깨구락지 뒷다리를 스무마리씩을 먹어 치웠다. 허천병(무조건 먹는 병) 났던 동네 꼬마들의 잔치는 늘 즐거웠다. 오랜만의 배부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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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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