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국적은 북조선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조총련 이야기<1> 규슈조고 2학년 정귀명씨

등록 2004.06.10 13:03수정 2004.06.1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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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소속 재일동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체포될까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그들은 북한의 앞잡이에다 빨갱이였고 만나서는 안 되는 전염병 환자들과 같았다. 그 시절, 누군가 일본에 갈 때면 주변 사람들은 조총련 계열과는 상대도 하지 말라고 충고하곤 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조총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냉전 시대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우리는 과연 조총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이 연재 기사는 일본에 있는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지금 살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려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일본에서 교환 유학중인 기자는 앞으로 총 15회 정도에 걸친 인터뷰 기사를 통해 조총련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볼 예정이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기타규슈에 위치한 규슈조선중고급학교(이하 규슈조중고)였다. 그곳에서 학생과 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앞으로 4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며 오늘은 그 첫 순서로 규슈조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정귀명군의 인터뷰를 싣는다. <기자주>


규슈조고 2학년 2반 정귀명군
규슈조고 2학년 2반 정귀명군장원재
-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한다면.
"이름은 정귀명입니다. 집은 야마구치 현입니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계속 민족 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규슈조고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 집에서 통학을 하는지.
"집에서 학교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저녁에 일본 예비 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고, 멀지만 통학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올해부터는 학교에서 서클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도 학교에서밖에 만나지 못하죠(출산율 저하, 귀화 등으로 민족 학교 학생의 수가 줄어들자, 총련 측에서는 점차 학교를 통합하고 있다. 정귀명 학생도 작년에 다니던 야마구치 조고가 올해 준공된 규슈조고로 통합되면서 두 시간 동안 통학하게 됐다)."

- 정규 수업 외에도 야간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요리 전문학교에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 대학 중에는 아직 민족 학교를 고등학교로 인정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려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 시험도 봐야 하고, 대학 입학시험도 따로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슈조고와는 별도로 3년 과정의 야간 예비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 예비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민족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에 차이가 있는지.
"조선 말과 조선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용에는 별 차이는 없습니다. 민족 학교에서는 일본어 수업 시간을 제외한 전 수업이 조선말로 진행되지만, 예비 학교에서는 수업 내용이 일본어로 진행됩니다."


- 민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중에서 야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 있나.
"일본 전문학교나 일본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입학 시험을 일본어로 봐야 하기 때문에 야간 학교를 다니거나, 따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에서 절반 정도는 대학을 위해서 따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취미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시간이 없어서 축구는 별로 하지 못합니다."


-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작년에 일본 학교 학생들과 축구 시합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심판이 일본인이었는데 노골적으로 편파 판정을 하더군요. 일본 팀의 반칙은 눈감아 주면서, 유독 저희 팀에게는 지나치게 자주 파울을 불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함께 분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 조선말은 어느 정도 하나.
"어렸을 때부터 계속 배워 왔기 때문에 교과서 읽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집에서도 조선말, 일본말을 같이 쓰고 있고요. 듣기가 가장 자신이 있고, 말하기가 가장 자신이 없습니다."

장원재
- 특별히 듣기에 자신이 있는 이유.
"요즘 학교에서 한국 노래와 드라마가 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저도 한국 노래를 듣거나,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인데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듣기 연습이 됩니다(웃음). 학생들 사이에서는 지금 <겨울 연가>와 <가을 동화>가 가장 인기가 있습니다(<겨울 연가>는 지금 <겨울 소타나>라는 제목으로 일본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저는 요즘에 <호텔리어>를 보고 있습니다. 대사의 40% 정도는 완벽하게 알아듣지만, 나머지는 말이 너무 빨라서 대충 무슨 내용의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정도입니다."

- 좋아하는 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가을동화>에 나왔던 송혜교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한국 가수 중에는 류(Ryu)를 좋아합니다."

- 재미있게 읽은 책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소설로 만든 책이 있는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만화 중에서는 <판타지 스타>라는 일본 축구 만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 현재 국적은.
"북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북조선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졸업 후 취직에서의 불이익 등을 이유로 한국이나 일본 국적으로 바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나.
"호적상의 이름은 '다카하키'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보통 일본에서 태어난 3, 4세들은 호적에 일본 이름을 올리고, 한국 이름으로 생활한다)."

-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유학을 갈 생각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에 가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학 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하지만 앞으로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 '한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당연히 '김치'입니다(웃음)."

장원재
- 한국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북조선 국적을 가진 재일 동포가 한국에 가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들리는 말로는 한번밖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고요(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지만, 지금은 북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동포들도 적절한 이유가 있다면 한국 대사관에 신고를 한 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도 한다)."

- 민족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점은.
"일본 학교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자신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게 됩니다. 사실을 밝히면, 학생들 사이에서 차별을 받거나 이지메를 당하기 때문이죠. 일본 학교에 갔다면 저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이 왜 자신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숨겨야 합니까?"

- 민족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할 때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편합니다(대학에 따라 민족학교를 정규 고등학교로 인정해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립학교들은 대부분 인정해주는 편이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공립학교에서는 입학을 위한 고등학교검정자격시험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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