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년 동안 서남해안에서 마구잡이 모래 채취로 해안선 유실을 가져오고 있다. 사진은 신안 다도해 모습정거배
게다가 건교부는 이 법을 개정하면서 '골재채취단지를 지정할 때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협의를 거치면 사전 환경성 검토 등을 거친 것으로 의제한다'는 내용을 새롭게 넣었다. 따라서 바닷모래 채취 허가에 앞서 환경영향평가 등 환경부와 해양수산부에서 갖고 있던 사전 통제권을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골재 수급을 우선시하는 건설교통부와 환경 보전을 주업무로 하는 환경부와 부처간 갈등 구조까지 만든 셈이다.
바닷모래 채취에 따른 적용 법률이 이원화 돼 있는 것도 무분별한 채취를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바닷모래는 크게 건설용 자재와 규사인 유리 제품 원료로 사용된다. 이러다 보니 건설 골재용 바닷모래는 건설교통부가 관할하는 골재채취법 적용을 받고 규사로 사용될 경우 산업자원부의 광업법을 적용 받게 된다.
또 건설 골재로 사용하려면 채취 허가를 시군구에 제출해 환경영향평가와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받으면 된다. 반면에 규사로 사용하기 위한 바닷모래 채취는 광업법에 따라 산자부에 광업권 등록을 한 뒤 채광 계획 인가를 받으면 된다.
또한 건설골재용은 허가 기간이 5년 이하로 돼 있는 반면 광업권 허가는 25년까지 설정할 수 있다. 관련법의 더 큰 맹점은 대법원 판례에서 보듯이 규사용으로 채취해 건설 골재로 판매해도 단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규사 광업권 허가를 받은 지역에서 채취되는 바닷모래가 건설 현장에서 대부분 사용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모래 없어진 신안해저 대형 수로 생겨
바닷모래 채취가 먼저 바다 밑 지형 변화와 연안 침식을 가져오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목포대학교 이인태 교수는 "바닷모래는 해저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형이어서, 먼 바다에서 채취해도 연안의 모래가 이동하게 돼 수심의 변화와 함께 물고기들의 산란지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닷모래 채취 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나 환경 단체에서는 바닷모래 채취로 해양생태계 파괴, 수산자원 악영향, 연안침식 유발 그리고 모래 자원 고갈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인하대 한경남 교수에 따르면 바닷모래 채취가 이뤄진 경기도 덕적도와 자월도의 경우 "어획량이 전보다 각각 74%, 85%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전남 신안군과 진도 해역 역시 모래 채취 이후 자연산 해초와 꽃게 새우, 바지락 등 수산물의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 신안군이 지난 2002년 위성항법장치를 통해 바닷모래를 채취한 해역을 조사한 결과 해남군 화원반도 시하 앞바다에서 진도군 조도 사이 해저에 길이 80㎞,폭 10㎞에다가 깊이 10~15m의 바닷 속 대형 수로가 발견됐다. 또 신안군 임자도 해안선은 지도상보다 육지 부분이 50~70m가량 침식됐고, 신의면 지미 해수욕장의 경우 모래가 쓸려나가 해수욕장 기능을 상실했다. 바닷모래 채취가 이뤄지고 있는 충남 태안 해역의 경우 유명한 꽃지 해수욕장 주변 모래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96년부터 2년간 관내 해역에서 바다골재 자원에 대해 조사한 결과 채취 가능량은 1억7500만㎥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신안군에 따르면 이미 가능량의 90%가 채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진도군과 신안군 경계 지역인 진도군 가사도 해역의 경우 채취 가능량이 936만㎥였지만 지난 2001년까지 양 자치단체가 무차별 허가를 내 준 결과 두 배 가까운 1628만㎥가 채취된 것으로 나타났다.
채취 금지로 불법 채취 성행
특히 일부 업자들은 당국의 단속이 불가능한 야간 악천후 등을 이용해 불법채취하고 있다. 목포해양경찰은 지난 4월 10일 새벽 2시쯤 무안군 해제면 해역에서 바닷모래를 불법으로 채취하던 선박 3척을 적발하기도 했다. 목포해양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채취 단속은 50건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불법 채취가 이뤄져도 적발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고 지역환경단체는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국무조정실은 골재수급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수도권 건설 골재난 해소와 주민 민원 해결을 위한 채취 해역 인근 주민 지원책 등이 종합 대책의 핵심이었다.
해양자원관리법 제정 제기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에서는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해양환경피해 복구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골재수급 안정대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9일 바다의 날을 기념해 목포에서 열린 '바닷모래 채취 문제점과 대안마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최재선 박사는 "모래 수급과 관리 정책의 난맥상은 관련 업무의 분산과 업무 협조 미흡 때문"이라며 관련 업무를 통합 조정할 수 있도록 해양자원관리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불법채취 행위(허가량 초과, 허가 해역 이탈 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처벌 규정을 엄정하게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밖에 대체 골재의 개발과 외국 모래 수입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정봉 푸른신안21협의회 상임의장은 "신안 앞바다에 매장된 바닷모래의 60% 가량이 최근 12년 동안 마구잡이 채취로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환경 파괴에 따른 부담 비용은 결국 국민의 혈세에서 낭비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 제도 개선과 법적인 보완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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