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내 건지 알았어"

[연극리뷰] <잘자요 엄마>

등록 2004.06.10 15:01수정 2004.06.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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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요 엄마> 포스터
<잘자요 엄마> 포스터극단 동숭아트센터
클라이맥스의 북받치는 감동을 전달 받기 위해 관객은 한시간여 동안이나 핀트 없는 모녀간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모녀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지 않고 독백하듯 이야기한다. 딸(제시)은 자살을 준비하며 아주 담담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엄마(델마)는 딸의 이런 행동을 의아해 하며 말려도 보고 타이르기도 한다. "잘 자요 엄마"라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간 딸은 끝내 방아쇠를 당겨 자살을 하고 엄마는 오열한다.

대학로 연극계에 화제를 몰고 온 <연극열전>의 일곱번째 공연 <잘자요 엄마>가 6월 4일부터 동숭아트센터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공연은 실제 모녀 사이인 윤소정과 오지혜가 극중 모녀로 나와 관객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관심 때문인지 평일에도 극장 안은 관객으로 발 디딜 수 없다.


무대는 평범한 미국 가정집의 모습이 충실하게 재현됐다. 무대 좌측의 거실과 우측의 주방이 주요 연기 공간이다. 거실에는 현관과 방으로 향하는 문이 있고 주방에는 다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다. 배우들은 충실하게 재현된 무대에서 거실과 주방을 옮겨 다니며 연기를 펼친다.

소품 또한 잘 준비가 되어 있어 싱크대 안에는 각종 주방 도구들이, 찬장에는 각종 접시와 사탕, 캐러멜, 코코아 가루가, 냉장고 안에는 케첩, 우유, 마시멜로우가 들어 있다. 거실에는 매니큐어 세트가 있다. 이런 소품들은 단순히 빈 무대를 채우는 역할뿐만 아니라 소품을 이용한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를 유도한다.

소품은 엄마와 딸이 서로 이해하지 못해 단절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은 오직 코코아나 매니큐어, 텔레비전 따위의 것으로 어머니와 딸이 고민을 털어 놓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지 않다.

딸의 자살을 앞둔 모녀의 대화는 건조하다.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이 하던 일을 엄마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딸은 자신의 짐을 떠넘기는 듯하고, 이야기를 듣는 엄마는 퉁명스럽기만 하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엄마나 남자 친구와 아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딸의 모습은 심드렁하다. 이들의 대화는 여느 모녀처럼 짜증도 내고 화도 내지만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관객은 재미없는 모녀간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것이다.

지루한 모녀간의 대화는 모녀가 소파에 앉아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딸이 정말 자살을 할 것이라는 것을 엄마가 확신하면서 급물살을 탄다. 딸은 덥고 냄새 나는 버스를 끝까지 타고 가느니 차라리 내리겠다며 "잘자요 엄마"를 외치며 방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근다. 엄마는 평생 자신의 소유처럼 생각했던 딸이 자신의 품을 떠나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한다.


윤소정과 오지혜 두 여배우는 마지막 20분간의 연기를 위해 한시간여동안 감정을 충실히 숨겼고, 비축한 에너지를 클라이맥스에 쏟아 냈다. 배우들의 마지막 20분간의 연기에 졸린 눈을 비비던 관객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연기였다.

<잘자요 엄마>는 연극과 뮤지컬에서 <양파>, <틱틱붐!>등의 수작을 만들었던 심재찬이 연출했다. 그는 사실적인 무대와 모녀간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적절한 조명으로 충실한 무대를 만들었다.


엄마와 딸 사이는 애증이 적절히 섞인 관계이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흉금 없이 터 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때때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엄마는 딸이 나이 들어 엄마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고, 딸은 자신의 나이를 살았던 엄마가 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한심해 한다. <잘자요 엄마>는 엄마를 이해하려는 딸이, 딸을 이해하려는 엄마가 보면 더욱 좋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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