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청 후 이순보가 백위길을 데려간 곳은 다방골 구석에 자리잡은 주막이었다. 아직 금주령이 풀리지 않았건만 이곳에서는 남몰래 술을 팔고 있었다.
주막의 주인은 이순보와 상당히 잘 아는 사람인 듯 널찍한 방으로 안내한 후 막걸리와 삶은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상위에 올려 극진히 대접했다.
"실은 내가 이 주막의 뒤를 봐주고 있다네 그렇기에 마음껏 장사를 하는 것이지."
막걸리 몇 잔이 오고 간 후 백위길은 갑자기 솔직하게 흉금을 털어놓자는 식으로 접근을 하는 이순보에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자네 요즘 기방의 애향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들었네만."
"아… 그게."
"가끔 혼인까지 했으면서 철없는 포교들이 기생의 치맛자락에 휘둘려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가 있네. 하지만 자네의 경우에는 늦도록 장가를 가지 못 했으니 이해가 가는 일일세. 내 참한 처자를 소개시켜 줄 터이니 이젠 기방에 발을 끊는 것이 어떻겠나? 다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네만."
백위길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투로 이순보를 쳐다보았다. 이순보는 막걸리 한 사발을 죽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애향이는 분명 다른 집에 첩실로 들어갈 아이라네. 그것도 모르고 자네가 이리 빠져 있다가 행여 상처라도 받지 않을 까 걱정이네."
백위길은 쓸데없는 소리 마라는 듯 피식 웃었다.
"애향이는 첩실로 들어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혹시 애향이에게 딴마음을 품고 계신 것은 아니 신지요?"
"이 사람아, 난 처자가 있는 몸인데 어찌 그런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그럼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이순보는 돼지고기를 한 절음 집어들어 씹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종사관 심지일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심종사관이 굳이 애향이를 첩실로 앉히겠다는 데 어쩌겠나?"
"자기가 싫다면 그만인데 왜 이포교님까지 나서서 제게 이러십니까?"
백위길이 워낙 완강하게 나가자 이순보는 나지막이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라고 중얼거렸다.
"이왕 여기까지 절 데려온 거 속시원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그러지, 자네 요사이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겐가? 박충준 일당으로부터는 돈을 받아 챙기더니 시전의 왈패 두목과도 알고 지내지 않나? 이런 사정을 포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것일세. 게다가… 일전에 포도청에서 죽은 싸전상인, 이번에 죽은 어물전 상인의 일에 자네가 관련되어 있음을 눈치채고 있네!"
백위길로서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자신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순보가 알고 있다는 것은 일전의 일로 알고는 있었지만 박충준이란 이름은 처음 들었으며 시전의 왈패 두목이라고 칭하는 끔적이와 알게 된 것은 충주에서의 일로 인해 그럴 뿐이라고 백위길은 강하게 항변했다.
"돈은 지금이라도 돌려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게다가 살인이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 이 일이 애향이와 무슨 관계가 있사옵니까?"
"심종사관도 이런 일들을 알고있네. 자네가 애향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을 이용해 자네를 해하려 들 걸세."
백위길은 기가 막힌 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제가 보기에는 이포교님이 상인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사옵니다. 싸전상인이 죽었을 때 수상한 이와 함께 그 집을 드나들었지 않습니까? 그건 어찌된 일이옵니까?"
이순보는 백위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입가에 삐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가 정녕 몰라서 하는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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