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천도라는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의 공세 이후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와전되고 있다. 기실 천도라는 다소 선정적인 외피만 벗겨내면 신행정수도 이전 정책은 그 수순을 단계별로 밟아왔다.
신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으며, 국회에서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으로 통과됐고 그 동안 공청회와 세미나를 곳곳에서 추진해왔다. 이런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해 천도론이라는 딴죽걸기가 '국민적 합의 부족'으로 비화되면서 공론의 장에서 절차민주주의 논란을 빚고 있다.
KTX, 새만금 사업, 부안 원전 사태에서 드러난 국책사업의 졸속추진과 행정 편의주의에 신물이 난 시민들은 연일 계속 이어지는 신행정수도 이전 비용 혼선과 논란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서울시가 주축이 되서 움직이는 일단의 지자체의 태도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이런 천도론을 시작으로 불거져 나온 반대 여론은 신행정수도 이전의 본래 목적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전 반대여론은 마치 천도라는 것이 기존의 행정수도 이전 논의와는 전혀 다른 '말바꾸기'이자, 권력남용의 표본인 것처럼 각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반박의 논리가 과연 건전한 정책비판의 관점에서 제기된 것인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천도냐 아니냐
반대여론의 핵심은 현재 추진되는 행정수도이전 계획이 천도냐 아니냐 하는 문제다. 국회에서 통과시킨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는 정부기관에 속하지 않는 헌법기관의 이전시 국회의 동의를 거친다고 명시되어 있다. 국회나 헌법재판소 등의 이전 문제는 앞으로 협의가 가능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국회 헌법재판소 청와대 등의 이전을 교과서적인 삼권분립 논의로 몰아가면서 전근대적인 천도로 탈바꿈시키고 이것을 기정사실화 시키는 데 있다. 이 기관들이 행정, 입법, 사법의 대표기관이고 이전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이 기관들의 이전이 수도를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행정'수도 이전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니까 반대쪽에서는 입법·사법기관을 이전하는 것은 본래 취지와 맞지 않고 합의된 바도 없다는 식으로 말장난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삼권분립과 서울 수도 이전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반대쪽 논리를 빌려쓰면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등의 주요 기관은 남겨두고 나머지 200여개의 정부기관을 이전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되물어 봐야 할 것이다. 하나의 기관이 역할의 대표성이 있다고 해서 그 기관의 이전을 전적적으로 수도 이전 논의로 연결하는 것은 창의적인 발상이긴 하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반박 근거가 될 수 없다.
국민적 합의에 대한 얘기도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이 부분은 국가운영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혼합된 방식으로 상호보완 작용을 통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전제해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에 있어서 이해당사자의 머리수가 많은 쪽이 항상 올바른 방향이라고 얘기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전체적인 균형의 논리라는 간접적이지만 큰 원칙에 합의하기 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더 좌지우지 되기 쉬울수가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만 국내 총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충청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지역이기주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물을 성질의 것인가는 상당히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국민투표가 꼭 능사인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여부를 엄격하게 헌법에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숫자대결에 의한 합의의 원칙 수용이 다수의 이해관계로 남용될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미 대의제의 절차적 적법 단계를 밟고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안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대의제를 일방적으로 직접민주제보다 열등한 방식으로 여기는 사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국민 투표가 능사는 아니다
국민투표 논의의 촉발이 전적으로 '천도론'이라는 허상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작금의 졸속행정이라는 빈축과 이전 대상 건물의 증축에 따른 비판에 무임승차해서는 안된다. 시비거리가 되고 있는 이전 대상 기관의 증축 사업은 계획 중이면 변경할 수 있고, 진행중이면 이전 대상에서 조정할 수 있다. 갈등사안마다 국민투표를 해법으로 얘기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다. 갈등이 제대로 된 갈등인지 그 맥락과 추이를 면밀하게 헤아려 봐야 한다.
서울의 과밀현상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그 서울의 팽창속도에 비례해 지방 발전은 계속 고사화 되고 있다. 국토의 불균형 발전은 케케묵은 지역감정의 근원이 되고, 비대한 도시는 도시대로 '삶의 질'의 하락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미 문화, 경제, 교육, 정치, 행정의 집중으로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자율적으로 지방을 택하라고 하기에는 규모의 논리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무용하다. 모든 기능의 집중이 서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땅값이 비싸고, 교통이 막히고, 도시공해가 심해도 서울거주를 포기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혜택을 주고 여건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의 집중 현상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민간부문을 강제적으로 이전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행정수도 건설이다. 공공기관인 행정기관을 분할해서 서울집중의 폐해를 완화시키고 지방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방법은 주도적인 정부의 의지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비용문제의 핵심은 아마도 기관 건물매각과 개발이익환수가 얼마나 가능한가이다. 이 문제는 기회비용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과 논리는 분분할 수 있지만 현재의 기형적 국토개발방식의 해법은 서울에 대한 추가지원이어서는 곤란하다.
서울은 포화상태인데 주변에 신도시와 위성도시를 건설해서 도시를 연담화(확대)를 시키는 것은 결코 해결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구의 과밀로 형성된 초거대 시장과 서비스의 중심지에서 민간부문을 회유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즉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천도가 아니라 이전의 필요성과 실효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물론 졸속행정에 대해선 삼엄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정략적 혹은 지역이익만을 의한 논의를 분간해 내는 것도 그것과 상응한 정도로 필요하다. 따라서 국민투표로 논란을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는 더욱 신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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