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도 '양심적 집총거부'

삼육대 신학과 이윤길씨 등 7명 집총 거부...군 당국 고발 조치

등록 2004.06.18 19:04수정 2004.06.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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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비군 집총거부자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예비군 집총거부자들김범태
근래 들어 사회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예비군에서도 ‘양심에 따른 집총거부’ 움직임이 일고 있어 향후 진행 상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5월 27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군부대에서 치러진 서울 삼육대학교 예비군 입소 훈련에서 이 대학 신학과에 재학 중인 이윤길씨 등 7명이 개인의 양심에 따라 집총을 거부, 고발 조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관할 예비군 대대는 이날 집총 수령을 거부한 이들에 대해 명령불복종으로 고발조치했다. 군 복무를 모두 마친 예비군들이 집총 거부로 고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지 8년 만이던 지난 1976년 6월 오진규씨 등 9명이 집단으로 집총을 거부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 오씨 등은 재판에 회부되어 40일간 징역을 살아야 했다.

모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들인 이들은 "개인적으로나, 신학생으로서 총을 든다는 것은 앞으로 목회할 사람들에게 부적당하다는 생각에서 결정했다"며 집총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예비군 집총거부자 김진섭 씨
예비군 집총거부자 김진섭 씨김범태
이윤길씨는 "입대 당시에는 집총 거부에 대한 교단적 전통이나 사상을 알지 못했지만, 전역 이후 이에 따른 원칙을 이해하고, 알게 되어 이러한 신념을 세우게 되었다"며 예비군에서 집총을 거부한 배경을 전했다. 이들은 "비무장, 비폭력, 평화적 신념이 자신들의 고유한 원칙이자 신념임을 확신한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집총을 거부할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진섭씨는 "이로 인해 발생할 앞으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계속해서 집총을 거부할 생각"이라고 피력했다. 김씨는 "이 문제는 개인적 신앙과 양심의 문제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좌우될 문제가 아니"라며 "집총 거부가 옳다고 확신하는 이상 계속 행동에 옮겨 실천할 것"이라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이들은 병역의 의무는 다하되, 사람의 생명을 겨누는 집총만은 거부하겠다는 '비무장 전투요원'으로의 복무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병역 거부와는 다르다. 실제로 우리 나라 군대에서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70년대까지 위생병과 등에서 비무장 복무제를 시행한 바 있다.

벌금 내도 집총 예비군 훈련 받아야

현재 이들은 담당 예비군 대대의 고발에 따라 관할 경찰서에 고발장이 접수된 상태. 이미 출석 요구서를 수령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이들에게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명령불복종에 의해 고발 조치되어 벌금형을 선고 받아 벌금을 납부하더라도 훈련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고, 내년으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명령불복종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처벌 되어 형량이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이들의 법 집행 절차는 고발이 연속되는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해당 군부대의 입장은 단호하다. 부대 책임자는 "법적 기준으로 대처하겠다"는 자세다. 관할 예비군 부대의 대대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규정을 들며 "향토예비군 설치법에 의해 (총을 들지 않는 한) 고발 조치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 역시 "이러한 사건에 있어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별다른 구제책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집총 대신할 예비군 훈련 대체 프로그램 필요

이 때문에 이들 집총 거부자들은 예비군 내에서도 집총을 대신할 제도적 보완책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라고 있다.

이기빈씨는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듯, 예비군에 대해서도 집총 훈련 이외의 대체훈련프로그램이 마련되길 바란다"면서 "양심에 의해 신념을 지키길 원하는 사람들이 획일적 법 적용으로 고통 받지 않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윤길씨는 "신념 어린 청년들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국가적으로 신중하고 전향적인 결정을 내려 빠른 시일 내에 해결점을 찾게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삼육대 오만규 신학과 교수는 "재림신자들의 비무장 복무 원칙은 과거에도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한 바 있다"며 "이들이 비무장 병과에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이러한 신념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판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예비군에서 양심에 따른 집총을 거부한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떠한 해법을 던져 줄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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