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69

쫓고 쫓기는 자

등록 2004.06.21 09:10수정 2004.06.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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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문을 열라 하지 않았는가!"

이른 새벽부터 우포도청에서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의복을 갖춰 입은 서 너 명의 사내들이 몰려와 크게 소리를 치며 소동을 일으켰다. 포도청문을 지키는 포졸들은 영문을 모른 채 당직포교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냐?"

김언로가 피곤한 얼굴로 나와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우린 승정원의 하속들이오. 간밤에 포도청에서 무고한 자를 잡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소."

"뭐라?"

김언로는 기가 막힌 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들! 승정원의 하속 따위들이 어찌 포도청의 일에 관여한단 말인가! 썩 꺼지지 못할까!"

"관여하겠다는 것이 아니오! 우린 그 무고한 자가 행여 해라도 당할까 하여 지키러 온 것이외다."


승정원 하속의 해명은 김언로의 화를 더욱 북돋을 뿐이었다.

"포도청이 어찌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곳이었더냐! 죄의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느니라! 어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승정원 하속은 더 이상 얘기가 통하지 않겠다 싶자 소매에서 서찰 한 통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여기 호조판서 박종경 나리의 글과 수결이 있사오이다."

김언로가 서찰을 받아 살펴보았지만 과연 호조판서의 수결인지를 알 수 없을뿐더러 엉뚱하게도 승정원 하속들이 이 일에 대해 설쳐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깐들 기다리게."

김언로는 서찰을 들고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심지일을 깨워 서찰을 보여주며 밖의 일을 얘기했다.

"나도 이것이 박종경 대감의 수결인지는 모르겠다네. 하지만 정말이라면 이거 큰일 아닌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위세를 가진 분인데 소홀히 일을 처리했다가는 아니 되네. 일단 그들이 원하는 데로 해주게나."

"하지만 어찌 승정원의 하속들 따위를 포도청에......"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닐세! 이 일은 포도대장께서 기침하는 데로 알리겠네."

김언로는 속으로 심지일의 소심함을 비웃으며 마지못해 승정원 하속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거 나중에 마주치지 말자고."

김언로는 영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하속들을 은근히 위협했고 승정원 하속들도 눈을 치켜올리며 김언로를 쳐다보는 것으로 응대했다.

"아, 아니 벌써 기침하셨사옵니까?"

박종경의 서찰을 쥔 채 포도대장의 처소로 간 심지일은 의관을 갖춘 채 문 밖으로 나서는 포도대장 박기풍과 맞닥뜨리자 적잖이 당황해했다.

"자네야말로 어찌 알고 인사 차 여기 왔는가? 몇 달 내로 전하께서 종묘로 납시니 얼마동안 내게 입궁해 있으라는 어명이 내려온 것을 알고 있었나?."

"네?"

포도대장의 자리는 잠시라도 비워서는 안 되는 지라 이런 경우에는 그 자리를 대신할 포도대장이 즉시 오는 법이었다. 정해진 바가 그렇다 하나 포도청에서 제법 오래 있었던 심지일로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조례 때까지는 새로운 사람이 올 것인 즉 잘 모시도록 하게나. 늦으면 조정 대신들을 볼 낯이 없으니 급히 가보겠네."

심지일은 서찰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박기풍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과연 조례 전에 새로운 포도대장 서영보가 종사관과 포교들이 도열한 가운데 임관되어 들어왔다.

"여기 심종사관이 누군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을 찾는 새로운 포도대장에게 심지일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심종사관! 간밤에 시전에서 잡아온 자는 당장 풀어주도록 하고 추후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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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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