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집에서 내건 현수막안병기
그런데 작년 겨울 이 거리에 수상한 현수막 하나가 걸렸다.
“칼국수 1500원”
이곳은 얼마 전 대전시청이 신시가지로 이전해 가기까지 대전시청과 중구청, 경찰서뿐만 아니라 각종 사무실이 즐비했던 번화가였다. 그래서 대전에서도 음식값 비싸기로 정평 난 곳이다. 그런데 이 거리에 언감생심 1500원짜리 칼국수가 납시다니! 아무리 불경기로서니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노는 물이 달라"라고 중얼거리며 이 싸구려를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것도 군대에서 배운 '정숙보행'을 응용해서. 그런데 힐끔 이 집 간판을 쳐다 본 순간 내 결심은 봄날 연줄 끊어진 연 날아가듯 사라지고 말았다.
"해망동 칼국수" 해망동이라면 내가 젊은 날 푸른 꿈 대신 싹수가 누런 빛깔의 막걸리를 마시며 살았던 군산 도선장 옆 동네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해망동"이란 낱말이 내 잠자던 그리움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었다.
나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은 30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였다.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그러고 나서 난 왜 이 집 간판에 '해망동'이란 말이 들어갔는지를 은근슬쩍 물어보는데, 사내 왈 수라간에서 일하시는 자신의 어머니 최정자(61)씨의 고향이 군산이라는 게 아닌가.
이윽고 양푼 크기 만한 사기 그릇에 담긴 칼국수가 나왔다. 깍두기 한 접시와 대접에 넘쳐날 정도의 김치도 함께. 워따메, 이 집에서 칼국수 먹다 죽은 사람 있어 염라대왕한테 영업정지 당한 적 있디야? 양이사 많다마는 맛이 별 거 있을라고?
난 칼국수를 한 가락 두 가락 사레들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먹어 나갔다. 그런데 맛이 제법 괜찮았다. 면발도 손으로 직접 밀어 만든 손칼국수였으며 국물 맛도 그만이었다. 내가 대전에 이사와서 먹어 본 칼국수 중에 가장 나았다고 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