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무라 동물원에서 찍은 멋있는 녀석. 이름은 모르겠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박철현
미사코와 미와코, 나. 이렇게 3인은 동물원에 들어가자마자 평상에 걸터 앉아 에너지 보충부터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정성스럽게 싼 주먹밥과 역 근처 슈퍼에서 산 음료수, 과자를 깔끔하게 해치운다.
옆 평상에서 장난치고 있던 귀여운 아이가 걸신들린 듯 먹거리를 먹어치우는 우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기에 혀를 내밀고 장난을 쳤다. 그러자 금세 아이가 웃으면서 이쪽으로 넘어 온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번쩍 안아들자 애가 놀랐는지 비명을 지른다.
미와코는 '또 시작이군'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미사꼬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뜬다. 하긴 전혀 모르는 애를 대화 한번 하지도 않고 갑자기 번쩍 들어올리는 행동은 아마도 처음 보지 않았을까? 보충설명을 했다.
"아! 괜찮아. 괜찮아. 한국에서는 다 이게 정을 표현하는 거니까."
"근데, 여긴 일본이잖아."
아내가 끼어든다. 미사꼬도 동조하는 눈빛이다.
'애 엄마가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둘이 왜 이러는 거야. 칫!'
아내가 옆자리의 애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하면서 애를 건네준다. 그리고 나는 또 일장연설을 들었다.
"애를 좋아하는 오빠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한번 안아봐도 될까요'한 다음에 애를 안아보고 그래야지, 갑자기 안으면 애도, 엄마도 얼마나 놀라겠어. 어쩌구 저쩌구…."
"응.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쩝"
이럴 땐 지는 게 상책이다. 이길 자신도 없을 뿐더러 맞는 말이니까. 문화 차이란게 이럴 때 드러난다. 일본에서 한국하던 식으로 전철에 서 있는 사람 가방 받아주려고 했다간 대번에 이상한 사람, 혹은 도둑으로 몰리는 문화 차이 같은 것. 어쩔 수 없다. 일본에 사는 내가 일본 문화에 익숙해지는 수 밖에.
식후 약간 휴식을 취한 다음 우리는 동물원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이노가시라나 우에노에 비한다면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작은 규모. 게다가 새 종류가 너무 많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본 이후 새에 대해 묘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환영할 만한 곳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마음은 평온해진다.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지지는 않을텐데 무언가 이상하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다른 평상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한다. 자판기 커피를 마셔가며 주위를 둘러 본다. 한 3초 정도 지났을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서늘함. 아! 평온함의 정체가 이것이었구나!
그렇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쪽을 봐도 아이, 저쪽을 봐도 아이. 물론 다른 두 동물원에도 아이들이 많았지만 비율적으로 감각적으로 하무라 쪽이 훨씬 애들이 많다는 느낌이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2~4살 정도의 애들, 이제 아장아장 걸어다니기 시작하는 애들이 눈에 밟힌다. 우에노에서 느꼈던 부담감과는 차원이 다른 평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