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삐삐'를 사랑하는 이유

아직도 삐삐 사용을 고수하는 강동욱씨

등록 2004.07.02 09:36수정 2004.07.0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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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동욱씨

강동욱씨 ⓒ 권윤영

90년대까지 최고의 통신수단이었던 삐삐를 기억하는가.


'8282(빨리빨리)', '1004(천사)', '38317(독일어로 리베 -사랑)' 등의 번호를 남기며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휴대폰이 보급되어 삐삐는 어느덧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삐삐를 고수하는 사람이 있다. 강동욱씨(29·경기도 광주 경화여고 교사)가 바로 그 주인공.

그는 96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삐삐를 사용하고 있다. 그 당시에야 모두들 삐삐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색다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삐삐를 고수하는 그의 모습은 생소하기까지 하다.

"신기하게들 바라봅니다. 고집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급하게 연락할 곳이 있을 때는 핸드폰을 빌려 쓰곤 했기 때문에 핸드폰을 구입할 것을 여러 차례 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물론 좋게 생각해서 낭만적이라는 사람도 있었고요."

불편한 점은 없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은 편하지만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얘기한다. 바로바로 연락을 취할 수가 없으니 상대방이 답답해하는 것. 사람들은 흔히 삐삐를 쓰는 것이 저렴하다고 생각해 '자린고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삐삐 사용료는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삐삐를 사용하는 것이 핸드폰 사용자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때도 있다. 삐삐 호출 비용은 몇 십 원 들지 않지만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해야 하는 삐삐 사용자들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직까지도 삐삐를 고수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기다림 때문이다. 요즘처럼 누구나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대에는 누구나 연락할 사람이 있으면 핸드폰을 꺼내서 바로 연락을 하면 되지만 그처럼 삐삐를 사용하는 사람은 공중전화를 찾을 때까지는 기다려야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몇 초가 되거나 아니면 몇 분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인지 모를 번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요. 우리가 가끔씩 잊고 있는 마음의 여유를 삐삐가 찾아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는 삐삐에 관한 추억도 잊지 못한다. 처음 삐삐를 샀던 날, 처음으로 삐삐에 메시지를 남긴 친구, 삐삐로 고민을 얘기했던 친구, 군대 문제로 고민된다며 친구가 남긴 메시지 등 지난 세월의 흔적과 추억들을 삐삐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가 현재 쓰고 있는 삐삐는 96년에 구입한 것. 처음 과외비를 받은 돈으로 한참을 망설인 끝에 구입한 것이었다.

"저의 대학 시절을 언제나 같이 했던 물건은 생각해 보건데 삐삐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의 모든 추억들은 삐삐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삐삐로 느낄 수 있는 설렘도 좋아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삐삐가 울렸는데, 모르는 번호가 찍혔을 때의 그 궁금증과 설렘을 아시나요?"

요즘처럼 발신자 번호가 찍혀서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는 핸드폰이 줄 수 없는 그런 설렘을 주는 삐삐이기에 그는 지금껏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현재 다음카페 '삐삐를 사랑하는 모임(삐사모)'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아직도 삐삐를 사랑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정기적으로 정모는 물론 사랑의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 사랑의 릴레이는 삐삐 번호를 남겨준 회원에게 외로워도 울지 않는 캔디 삐삐를 살려주는 활동. 캔디 삐삐는 찾는 이가 없어 울리지 않는 삐삐를 뜻한다.

때로는 삐삐가 사랑을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방학에는 시간이 되는 회원들과 함께 자원 봉사를 진행했던 그는 올해에도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삐삐 판매처와 협의하여 삐삐 판매의 일부를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카페에 애정 있는 삐사모 회원들이 많이 늘어서 회비를 걷어 연말이나 연초에 좋은 곳에 썼으면 하는 계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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