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를 통해 명문가의 17대 장손이 학교 아이들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장면을 보았다. 칠판에 어려운 한자를 써내려가며 열심히 설명을 하시는데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는 집중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10살 정도 되는 그 아이들이 그것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보통 우리는 명심보감, 논어, 고사성어 라고 하면 어려운 한자부터 떠올리며 어른들도 선뜻 배우기를 꺼려한다. 물론 친절하고 쉽게 한글로 번역되어 나온 책도 많지만 여전히 본서의 내용을 풀이하고 해설하는데 충실한 경우가 많아 현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필자는 교육이라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모습과 문제를 슬기롭고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줌으로써 자아실현을 이루고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교육 현장에서는 "좋으니까 무조건 따르라","나쁘니까 무조건 하지마라"는 억지로 주입하는 교육 방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과 방송, 언론매체의 영향으로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리타분한 옛날 어른들의 이야기나 수긍할 수 없는 막연하고 허황된 이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과거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왔으며, 지금도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윤리 도덕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삼강오륜[三綱五倫] - 유교(儒敎)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의 강령(綱領)과 5가지의 인륜(人倫) - 은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어려운 한자가 섞여있는 삼강오륜 책은 꺼내지도 말고 보여주지도 마라.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그 책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를 보는 순간 마음속에 있는 배움의 문을 닫아버린다. 일상생활 속에서 삼강오륜의 내용을 접목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서 직접 느끼고,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삼강오륜을 배우는 목적은 어려운 한자를 외우거나 내용을 풀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예의범절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내용을 교육하더라도 반드시 명심하고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며 이것은 글자 그대로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그리고 학문으로 말하면 개론(槪論)에 해당되는 것으로써 대략의 설명을 말한다.
오륜은 삼강의 도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소중한 가치들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것이며 불변의 진리가 담겨있다. 지금부터 오륜의 내용들을 어떻게 시대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첫째,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버지가 자녀를 무릎에 앉혀 놓고 편안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우선 친근함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라. 따스한 아버지의 체온, 부드러운 미소, 다정한 음성, 사랑스런 눈길, 애정어린 몸짓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이의 기분이 좋아 보이면 바로 그 느낌이 사랑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라.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 자녀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자녀들의 사랑도 아버지의 기분을 좋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친애(親愛)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라. 그리고 실천을 통해 항상 사랑이 넘치는 부자관계가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라.
둘째,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면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예로 들면서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 좋다. 우선 의리가 무엇인가부터 이해시켜 주라. 의리(義理)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 남과 사귈 때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은 살아있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먼저 직장에서 아버지가 의리를 지켜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경험과 의리를 지키지 않아서 나쁜 결과를 초래했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또는 친구들과 의리로 인해 생겼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기회를 준다.
의리가 좋다는 것을 느꼈다면 의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는 믿음의 창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직장에서, 자녀들은 학교에서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고 함께 실천을 다짐하라.
셋째, 부부유별(夫婦有別)은 부부 사이에도 서로 침범치 못할 인륜(人倫)의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주말에 가족끼리 거실에 있는 티테이블에 앉아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하면 좋을 것이다. 우선 남성과 여성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라. 그리고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라.
자녀들에게는 이러한 신체적인 차이와 사회적인 인식의 차이로 인해 학교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어떤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는지 말할 기회를 주라.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하라. 부부 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무엇인지 느끼고 깨달았다면 마지막으로 항상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좋은 일임을 실천을 통해 증명해 보이라
넷째,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하면서 경노석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좋을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 “ 왜 어른은 공경해야 하는가? ”, “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존경해야 하는가? ” 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다.
우리는 어떤 설명과 이해도 없이 그냥 무조건 어른에겐 인사해야 하고, 존경심을 표현해야 하며, 우선권을 드려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면서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고 무조건 존경받고 대우받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학교에서는 나이 많은 수위 아저씨가 새파랗게 젊은 선생님에게 항상 굽신거려야 한다. 직장에서는 만년 과장인 아버지가 젊은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군대에 가면 나이고 학벌이고 아무 상관없다. 그냥 먼저 들어간 사람이 상사가 된다.
결국 어른에 대한 공경심은 나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역할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혼란 속에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공경심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을까? 우선 “ 왜 어른은 존경받아야 하는가? ” 에 대해서 확실히 얘기해주라.
어른은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보다 일찍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기 때문에 풍부한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의 존재 이유이다. 부모님이 없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 생명의 은인인데 당연히 존경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님은 또한 나를 길러주고 교육시켜 주신 분이다. 누구나 갓난아기에서 돌을 지나 혼자 움직이게 될 때까지 절대적인 보호기간이 필요하다. 부모님이 밤잠을 설쳐가며 배고플 때 우유를 먹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님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부모님은 당연히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노석을 어르신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그 분들은 나이 때문에 신체적, 건강상 약하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 우리들보다 힘이 든다. 그리고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미덕이다. 지금 내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면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 힘들어 할 때 누군가가 자리를 양보해 줘서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노인들 보다 살아갈 날이 많아서 앞으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 는 말은 앞으로 먹을 기회가 많은 사람이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특히 나보다 약한 노약자를 위해 뭔가를 희생하고 나누었다는 것은 봉사를 통해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칭찬받을 일이다.
다섯째, 붕우유신(朋友有信)은 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을 뜻한다. 이 말은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거나 드라이브를 하는 자동차 안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면 좋을 것이다. 우정과 친구 사이의 믿음에 관한 좋은 이야기와 글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아버지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이다.
참고로 필자는 우정을 이야기 할 때 한국의 전래동화 한편을 즐겨 인용한다. 옛날에 성인이 되어서도 학업을 멀리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을 좋아하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그 철부지 아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인지 알아보라고 시킨다. 그러자 그 아들은 돼지를 잡아 지게에 실어 가마니로 덮고는 밤새도록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자신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으니 보호해 줄 것을 친구들에게 부탁하였다.
하지만 수십 명의 친구 중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그를 보호해 주었다. 그 일로 인해서 그 아들은 진정한 우정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깨닫고 단 한사람의 친구를 소중히 여기며 학업에 매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다. 과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단 한사람이라도 내게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며칠 전 프레스 센터에서 “ 국가혁신을 위한 신학습 시대를 연다 ” 라는 주제로 평생교육에 관한 국민 대토론회가 열렸었다. 수 많은 평생교육 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나온 연사들의 발표 내용을 들으며 진정한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식과 시험 보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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