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45

보따리 내놔요! (3)

등록 2004.07.05 15:25수정 2004.07.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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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야, 너는 잠시 물러가 있거라.”
“예! 어머니.”

무언화 역시 이상하였지만 어쩌겠는가? 공손히 대답한 그녀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가고 전각의 문이 닫히는 동안 침묵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연화부인의 눈에 의혹의 빛이 감돌았다.


‘……?’

낮에 철기린이 왔을 때 그에게선 삼엄함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은 가운데 소성주를 호위한다는 십팔호천대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호탕한 척하였지만 철기린 본인의 태도에서는 온 세상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듯한 거만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삼엄함도 없었고 오만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초조해 한다는 느낌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의 주인이 될 사람에게서 느껴질 수 없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유난히도 색을 밝힌다는 그가 꽃처럼 아름다운 무언화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그 연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려 할 때였다.


“어, 어머니!”
“예에? 어머니라니요? 소성주님, 그, 그게 무슨……?”

“어머니! 소자, 회옥이옵니다.”
“……?”


“어머니! 소자를 보십시오. 소자, 회옥이옵니다. 어머니!”
“헉…!”

느닷없는 소리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연화부인은 고개를 들어 철기린을 바라보다 흠칫하며 물러섰다.

방금 전 철기린이 앉아 있던 태사의에 웬 낯선 청년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여의안면변형술로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 것이다.

“어머니! 소자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내 아들이라고요? 내 아들 이름이 회옥인데… 회, 회옥이 인데… 누, 누구신가요? 예? 어떻게 내 아들 회옥이를… 회옥이를 어떻게 아시나요?”

“어머니! 태극목장 제일목부의 아들 이회옥입니다.”
“마, 말도 안 돼! 여기가 어딘데… 지금 장난하시는 건가요? 아냐, 이건 꿈이야. 내가 너무 원해서 꿈을 꾸는 거야.”

“어머니! 저를 똑바로 바라보세요. 정말 못 알아보시는 건가요? 예? 저, 어머니의 아들 이회옥 맞습니다.”
“회, 회옥이라니…? 회, 회옥이라니… 내, 내 아들… 끄응!”
“앗! 어머니!”

이회옥은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에 잠시 정신을 놓았는지 쓰러지는 모친을 받아 안았다. 그리고는 황급히 침상에 눕혔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흐흑! 어머니, 소자 회옥입니다. 소자가 왔다구요. 흐흑! 어서 정신 차리세요.”

연화부인이 정신 차린 것은 반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끄으응……!”
“어, 어머니! 이제 정신이 드세요?”
“어머니라니? 누구…? 회, 회옥이냐? 정말 회옥이야? 정말 네가 온 거냐고? 꾸, 꿈이 아니고…?”

연화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어머니, 소자 맞습니다. 어머니의 아들 회옥이예요.”
“어, 어디 보자. 우리 아들, 어디 보자. 흐흑! 흐흐흑!”
“어머니…!”

잠시 이회옥의 얼굴을 쓰다듬던 연화부인은 그를 와락 끌어안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하나뿐인 아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 무슨 일을 겪었던가!

정절을 잃었기에 진작에 이 세상과 하직하였어야 하나 그러면 아들에게 해코지할까 싶어 짐승 같은 방옥두와 한 세월을 보냈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참으로 지옥 같은 세월이었다.

그 긴 세월 내내 어떻게든 아들의 행방을 알아내어 한번이라도 안아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렇기에 모진 목숨이지만 끊지 않고 이어왔던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힘이 들거나, 너무도 치욕스러워 세상 살 맛이 안 날 때면 늘 아들을 만나는 상상을 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을 만나면 환한 미소로 맞이하고, 따뜻한 음식을 지어 먹이고, 토닥토닥 두들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리라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바라던 아들을 품에 안자 그런 생각은 모두 날아가고 그동안의 치욕만이 뇌리를 스쳤다. 하여 굵은 눈물을 쏟는 것이다. 너무도 억울했다!

반항할 힘조차 없는 자신을 강제로 겁탈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시누이인 이형경과 더불어 색마를 지아비 삼아 살을 섞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억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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