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80

여인의 음모

등록 2004.07.10 08:50수정 2004.07.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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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포도대장이 다시 돌아 왔나 싶어 깜짝 놀란 신석상이 돌아보니 포교 행색을 한 낯선 자였다.

"뭐하는 놈인데 여기까지 들어오게 놓아두었는가?"


잡힌 손을 뿌리치며 신석상이 포졸들에게 크게 화를 내었고, 그 포교는 급히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전 우포도청의 포교 백위길이라 하옵니다."

"헌데? 우포청 포교면 좌포청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할 수 있단 말인가?"

백위길은 막상 혜천스님이 갇혀 있다는 것까지 확인하고서도 뭐라 딱히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자의 통부는 확인하였느냐?"


포졸들은 굽신거리며 통부를 확인하였노라고 답했고 그 사이 백위길은 궁색한 핑계를 떠올려 말했다.

"이 자는 우포청에서 쫓던 자입니다."


"그래서? 도둑을 잡는데 좌, 우포청의 구분이 있었던가? 어서 여기서 나가게!"

신석상과 백위길이 옥신각신하고 잇는 사이 포졸 하나가 뛰어와 급히 보고했다.

"포도대장께서 속히 죄인을 끌고 오시라 하옵니다."

신석상은 허둥지둥 혜천을 끌고 포도대장 이석구 앞으로 달려갔다. 이석구는 술에 절어 퀭하니 풀린 눈으로 등채를 거꾸로 잡고서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신석상을 쳐다보았다.

"이놈! 포장이라는 놈이 중놈 하나를 못 다뤄 이리도 늦는단 말이냐! 일단 저 중놈의 옷을 벗기고 굵은 매를 골라 매우 쳐라!"

죄명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다짜고짜 매질을 가하려 하는 이석구를 보며 백위길은 멀리서 발만 동동 굴릴 따름이었다. 제대로 깎인 곤장도 아닌 흉측한 모양새의 굵은 몽둥이로 인정사정 없이 열대의 매를 맞은 혜천은 까무러치고 말았다.

"뭐 저런 허약한 중놈이 있느냐. 부처의 은덕이 이리도 미약했던 것이냐?"

이석구는 자기 말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 웃으며 찬물을 끼얹어 혜천의 정신이 들도록 명했다.

"어떠냐? 네 놈의 죄를 이실직고 하렸다!"

혜천이 말을 하는 대신 신음소리만 내자 신석상이 재빨리 끼어 들어 '거렁뱅이가 중의 행색을 하고 다니기에 잡아왔다'고 둘러대었다.

"그래? 그거 고얀 놈이로구나. 장 백 대를 때린 뒤 도성 밖으로 내쳐버려라."

이석구의 어이없는 판결에 숨어서 보던 백위길은 물론 신석상마저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 때 탈을 쓴 사내 하나가 어디선가 튀어와 곤장 든 나졸을 때려 쓰러트렸다.

"아니?"

뜻밖의 일에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했고 탈을 쓴 사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혜천을 어깨에 짊어지더니 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느냐! 저 놈을 잡아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석상이 포졸들과 함께 달려나갔지만 순간 튀어나온 백위길과 부딪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어이쿠! 저리 비키지 못할까!"

백위길은 일부러 느릿느릿 일어났고 신석상은 탈을 쓴 사내를 정신 없이 쫓았다. 사내는 혜천을 짊어진 채 문을 지키는 포졸을 발길질 몇 번으로 쓰러트린 뒤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놈 잡아라!"

신석상은 탈을 쓴 사내를 정신없이 뒤쫓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지금 개고기 같은 포도대장이야 아무 것도 모르니 중을 죽여 버릴 것이 뻔하다. 지금 야단을 맞더라도 놓아주고 나중에 몰래 저 놈들을 천천히 잡아들이는 것이 나으리라.'

신석상은 포졸들을 다른 길로 둘러가도록 이른 뒤 자신은 발걸음을 쉬며 정신 없이 도망가는 사내와 혜천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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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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