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친북병’에 물들어 있다?

비전향 장기수 의문사 인정 논란 등 <매일신문> 논조

등록 2004.07.14 00:55수정 2004.07.1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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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는 비전향 장기수 3명의 죽음을 의문사로 인정했습니다. 고 최석기씨, 고 박융서씨, 고 손윤규씨가 그들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결정을 내린 1기 의문사위 때와는 달리 일부 언론에서 이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를 둘러싸고 해묵은 색깔시비가 불거져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논란의 과정에서 대구지역의 주요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어떤 보도 경향을 나타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방지인 관계로 기사는 연합뉴스를 인용하는데 그쳤습니다. 때문에 매일신문의 일반적 보도 경향을 알기 위해서는 사설을 주로 살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신문은 7월 2일부터 9일까지 이번 논란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사설을 여섯 차례 실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7월 2일치 사설 <간첩ㆍ빨치산에 '민주운동'이라니>


우선 논란의 발단이 되었던 비전향 장기수 3명과 사상전향제도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고 최석기씨


-1955년 남파 간첩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19년간 복역 중 1974년 4월 당시 63세로 사상전향을 거부하다 경찰이 동원한 깡패 재소자 2명에게 맞아 숨짐.

고 박융서씨

-1958년 남파 간첩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16년간 복역 중 1974년 7월 당시 70세로 사상전향을 거부하다 '전향공작반'에게 바늘로 온몸을 찔리는 고문을 받은 뒤 자살.

고 손윤규씨

-1955년 자수한 빨치산이었지만 사형 선고 1960년 무기 징역으로 감형 21년간 복역 중 사상전향의 강제성에 단식으로 저항하다 1976년 4월 당시 74세로 강제급식 과정에서 숨짐.

사상전향제도

-1933년 조선총독부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 낸 '사법당국통첩'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적용돼 오다가 1973년 8월 '전향공작전담반'이 만들어지면서 악명을 떨쳤다. 1998년 폐지됐으며 이 제도를 대체한 준법서약제도도 2003년 폐지됐다.

7월 1일 의문사위는 앞의 사실을 밝혀내고 비전향 장기수 3명의 죽음을 의문사로 인정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매일신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체제를 신봉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극히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자칫 우리의 헌법정신이나 국가 안보 현실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있어 더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이는 헌법은 물론 국가보안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고 더욱이 아직까지 우리 군(軍)이 존재하는 이유가 모호해지고 국정원의 존립마저 도마위에 올라야 한다.…송두율씨에게 검찰이 징역 15년을 구형한 그 자체도 무의미한 게 아닌가."

7월2일 사설
7월2일 사설매일신문
둘째, 7월 5일치 사설 <탈북자들의 탈남, 여기가 북한인가>

7월 3일 미주한국일보에 이런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지난 97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했던 미사일 기술자 부부가 지난 6월말 미국 이민귀화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그 이유는 지난해 상원 청문회 참석 이후 한국 당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내용이 확인된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찾아 남으로 왔던 그들이 남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낯선 이국땅으로 떠났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 동포를 품는 남한 사회의 포용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매일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탈남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남북관계의 '이상한 진전'으로 탈북자들에게 남한은 북한과 비슷한 종류의 정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이야기다.…햇볕정책 이후 우리 사회는 이념적 퇴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려다 우리만 북한을 닮아가고 있는 꼴이다. 간첩을 민주화인사로 둔갑시키…는 등의 반민주적 사건들이 예사로 일어난다. 탈북자들의 탈남은 이런 이념혼란의 산물이다."

7월5일 사설
7월5일 사설매일신문
셋째, 7월 6일치 사설 <의문사위, 북한 대변기구인가>

기한이 끝난 2기 의문사위는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해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할 때 북송을 희망하는 남한 거주 강제 전향 장기수들을 북한으로 보내자는 제안을 할 예정이라고 7월 5일 밝혔습니다.

현재 강제 전향 장기수는 28명이며 모두 고령입니다. 이들은 지난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송될 때 전향자라는 이유로 즉 형식적으로 남한을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기 의문사위가 밝혔듯이 이들의 전향은 불법적인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고 또 이들 모두 고령이고 북송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기 의문사위의 제안이 그다지 지나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2기 의문사위의 제안에 대해 매일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상식 밖의 행동으로 국민들을 또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런…제안을 서슴지 않은 것은 이념적 경직성이나 좌충우돌의 독선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참여정부 전반의 고질병이기도 하다.…지금까지의 경과를 지켜보면…간첩·빨치산, 강제 전향자와 같은 민주체제를 부정한 경력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의문사위가 설치되었나 하는 의구심을 높인다. 이런 외눈박이 의문사위는 더 이상 존속되거나 기능을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덧붙어준다."

7월6일 사설
7월6일 사설매일신문
넷째, 7월 7일치 사설 <'간첩 민주운동'파문 확산 막아야>

7월 6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제111차 회의를 열어 지난 2002년 10월 25일 이송된 '변형만·김용성 씨 사건'에 대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자(간첩)"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 우선 '변용만ㆍ김용성씨 사건'과 사회안전법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변용만ㆍ김용성씨 사건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으로 15년 형을 살고 만기 출소했음. 그런데 1970년대 비전향 좌익 사범 관리를 위해 제정된 사회안전법에 의해 다시 감옥에 갇힌 뒤 단식 농성을 하다 강제 급식 과정에서 숨짐. 이들에 대해 1기 의문사위가 의문사로 인정했고 보상심의를 의뢰했음.

사회안전법

-비전향 좌익 사범 관리를 위해 박정희 정권이 1975년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 이 법에 따라 이미 출소한 150여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보안감호 처분을 받고 다시 감옥에 갇힘. 1989년 폐지됐지만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들은 지금도 '보안관찰법'에 따라 자신의 일상을 신고할 의무를 강제받고 있음.

이에 대한 매일신문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2기 '의문사위원회'가 남파간첩과 빨치산에 대해 민주화운동관련 의문사로 인정한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면서 자칫 이념논쟁의 사회혼란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화보상위원회(약칭)가 이와 유사한 '간첩 2명'에 대해 민주화운동 기여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건 '논란의 종지부'가 될 명쾌한 판단으로 여겨진다.…결과적으로 '2기 의문사위'는 간첩을 '민주화운동 기여자'로 봤고 민주화보상위원회는 "간첩은…'민주투사'가 될 수 없다"면서 결론적으로 의문위의 결정을 반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누가 봐도 타당한 법해석이다.…"

7월7일 사설
7월7일 사설매일신문
다섯째, 7월 8일치 사설 <남북정상회담 서둘러선 안 된다>

7월 7일 열린우리당은 8·15를 전후해 남북국회회담을 열고 여기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논의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크게 변화하는 역사적 시점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남과 북이 서로 가까워지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외세의 개입으로 고통의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의 답방은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매일신문의 시각은 이렇습니다.

"…원칙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그러나…또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다. 의문사위와 같은 급진적 사고가 정리되지 않은 채 북한과의 회담을 서두를 경우 내부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우리의 정체성과 남북관계의 미래를 분명히 밝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남북 간 현안에 접근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7월8일 사설
7월8일 사설매일신문
여섯째, 7월 9일치 사설 <국가이념 혼란 언제까지…>

①7월8일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를 맞아 일부 재야단체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김 주석을 찬양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②유족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KAL기 폭파사건' 재조사 문제도 요즘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③KBS·MBC가 국가보안법과 관련하여 송두율 교수 사건을 방송하려고 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이러한 일들에 대해 매일신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요즘 우리의 국가 이념 혼란이 심각한 상태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하여 자유민주의 개념을 부정하거나, 법치주의를 뒤흔드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역사의 반동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국가이념의 뿌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김일성 사망 10주기…제주4·3사건…KAL기 폭파사건…송두율씨…이념혼란의 산물로 비쳐진다.…우리 사회는 지금 '친북병'에 물들어 있다. 역사를 크게 보지 못하는 탓이다."

7월9일 사설
7월9일 사설매일신문
마치며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최근의 사회적 변화에 <매일신문>은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극히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발상", "북한을 닮아가고 있는 꼴", "이념적 경직성이나 좌충우돌의 독선", "국가 이념 혼란이 심각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매일신문>식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독선적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매일신문>식 사고가 국가를 혼란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60-70대 된 노인이 그것도 자신의 죄 때문에 14-21년간 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상을 전향시키겠다고 온갖 고문을 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목숨까지 빼앗겼습니다. 그들의 이런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사상전향제도 같은 권위주의의 전형적인 제도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상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권위주의에 저항한 죽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된 사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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