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전의 타당성 논쟁을 떠나 이제는 정부와 조·동 등 거대 독과점신문과의 사활을 건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신문들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발언을 문제삼아 말꼬리 잡기에 여념없고 그 가운데 정부는 입지선정 평가결과까지 끝내고 순회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일정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 작업을 일정대로 진행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행정수도특별법 국회통과시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언론들이 최근 일부 단체들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소송 추진 방침에 대대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논쟁이 가열되었다.
문제는 이들 언론의 의제 설정이 행정수도 이전의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의제가 노무현 정권의 발목을 잡는 데 아주 유용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제기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비판 자체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에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 신문들은 대통령 탄핵은 합헌이지만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이지만 신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는 반드시 해야 하며 행정수도 이전이라면 모르지만 천도는 안된다고 한다. 탄핵정국의 여론조사는 '포퓰리즘'이지만 신행정수도 여론조사는 '국민의 뜻'이다.
이러한 가운데 신행정수도 이전 반대여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신문들의 공세는 도를 넘어섰다. 지난 6월 8일 이전대상 국가기관이 발표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이성을 잃은 무차별 공세는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최근에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발언을 트집잡아 본질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신문들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 논리로 들고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국민적 합의 없음'이다. 그래서 거세게 요구했던 것이 바로 국민투표이다. 그런데 그 국민투표 실시론은 6월말 들어 다소 수그러진다. 반면 '국민적 합의' '광범위한 여론 수렴'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조선일보에서 '국민투표'라는 말이 마지막 나온 것은 6월 25일이다. 조선은 김형성 성균관대 법대 교수의 <국민투표해야 명쾌해진다>는 제목의 시론을 통해 특별법의 국회통과는 "무엇보다 국가 중대사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의 주장을 보자.
"민주적 절차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이루어진 결정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논의과정을 통해 반대 입장이 수용되고 해소되지 못하면 합의로서의 의미는 찾기 어렵다. … 부족한 국민적 합의를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대안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투표다.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국민투표가 이루어졌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나 지금이라도 국민투표로 국민의 의사를 묻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조선 6월 25일자 시론)
그렇다면 지난 3월 조선이 숱한 외부 필진들을 동원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을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한 그 글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제는 정치적 정당성이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국회와 대통령에 의해 이중적으로 대변될 뿐 아니라, 국민의 여론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성은 오로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조선 3월 19일자 시론 '성숙한 사회로 가는 학습기회' 이진우 계명대 교수)
"국회에서의 탄핵안 통과를 두고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하는 주장도 타당치 않다. 민주주의의 절차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 국회의 결정이 민의에 반한다고 생각되면 다음 선거에서 다른 대표를 선출하면 된다. 그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 법치이고 민주주의이다. 국민 다수의 민의라도 법치를 거치지 않으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조선 3월 18일자 아침논단 '뭐가 헌정중단이란 말인가' 박지향 서울대 교수)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은 절차적 정당성 면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점에서 헌정(憲政) 중단이 아니라 헌법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맞다."(조선 3월 17일자 시론 '총선 패배한 쪽이 물러서야'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민주적 절차라 함은 다수결 원칙과 법치주의(절차적 합법성의 보장)를 말함이다. 민주적 절차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의 대통령 탄핵은 다수결 원칙과 절차적 합법성을 어겼다고 하기는 힘들다.(조선 3월 17일자 기고 '탄핵정국은 권력다툼' 김인영 한림대 교수)
국회가 여야 합의로 특별법까지 제정해놓고 이제 와서 행정수도 이전의 찬반을 묻는 것은 이율배반일 수밖에 없다. 만약 대통령이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의하게 되면 대통령은 의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일이 된다. 또 국민투표가 성사되어 지역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국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될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치러야할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신문들의 이현령비현령
더구나 대통령 탄핵소추과정에서 법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언론이 국회의 입법절차까지 무시하며 국민투표론을 들고 나온 것은 설명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론들이 6월말 들어 슬그머니 국민투표란 말을 거론하지 않기 시작한 것 아닐까?
이들 신문이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국민합의를 요구하는 배경으로 '국민여론'을 들이민다. 다수의 국민이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7월 7일자 <"행정수도 이전 52%가 반대"> <'수도이전 반대' 갈수록 거세다>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힌 응답자가 52.7%로 찬성(41.8%)보다 많았음을 부각시켰다. 아울러 팽팽하던 찬반의견이 이제는 반대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충청과 호남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반대하고 있다면서 충청권 고립화를 시도하려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9일자에서도 7월 들어 반대여론이 더 많다는 각종 여론조사를 소개하면서 "찬반 여론은 지역별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반대여론에 힘입어 조선은 "국민적 합의를 거치라"고 을러댄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수도 이전이 '공약' 단계에서 '정책'으로, 다시 '실행' 단계로 발전해 가는 동안 실제로 그것이 실행에 옮겨질 것이라고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정부가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고 이에 따른 찬·반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면서 반대 여론이 수직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여론의 흐름은 앞으로 논의가 보다 세부 상황으로까지 옮겨가고, 사업 실행에 따른 부작용이 노출되면 더욱 가파른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이다. … 정부는 이왕 벌인 일이라며 우격다짐으로만 나갈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는 찬·반의 목소리를 마음과 귀를 열고 들으면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자세를 가져야 한다."(조선 7월 8일자 사설 <수도 이전 輿論 변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사설을 보면 예전에는 행정수도 이전이 실행에 옮겨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가 막상 행정수도가 옮겨진다니까 반대여론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와 국회가 그냥 장난으로 행정수도 옮긴다고 특별법 만들었단 말인가? 더구나 한나라당이 지난해 4월 정부와는 별도로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입법발의한 것은 쇼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집요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론의 추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데 조선의 고민이 크다. 지난 6월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찬성의견은 40.1%(6월 12일 리서치플러스) 41.1%(6월 15일 코리아리서치), 46.2%(6월 16일 갤럽), 41.8%(7월 4일 한길리서치), 40.9%(7월 5일 현대리서치), 38.7%(7월 8일 갤럽), 37.9%(7월 10일 리서치플러스), 40.3%(7월 13일 TN소프레스)였다. 결국 조선, 동아의 공격이 극심했던 시점 30%대로 잠시 떨어졌지만 6월이나 7월이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반대의견이 42.9%(6월 12일 리서치플러스) 50.5%(6월 15일 코리아리서치), 48.0%(6월 16일 갤럽), 52.7%(7월 4일 한길리서치), 51.0%(7월 5일 현대리서치), 51.3%%(7월 8일 갤럽), 55.3%(7월 10일 리서치플러스), 55.1%(7월 13일 TN소프레스)로 점차 상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달여 동안 사운을 걸다시피 지면을 도배해 반대했는데도 10%내외의 상승률밖에 가져오지 않은 것은 조선이나 동아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한 구석이다. 그래서 조선은 사설을 통해 "반대 여론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고 견강부회식으로 주장하고 "이런 여론의 흐름은 앞으로 논의가 보다 세부 상황으로까지 옮겨가고, 사업 실행에 따른 부작용이 노출되면 더욱 가파른 변화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성급하게 기대를 표출했던 것이다.
웃기는 것은 7월 9일자 "충청권 응답자들 54.3%가 행정수도 이전이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했다는 보도이다. 얼마나 물고 늘어지고 딴지를 걸었으면 충청권에서조차 행정수도 이전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겠는가? 이를 두고 조선은 마치 충청권에서도 반대가 많다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 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7월 8일 발언하자 9일자에 <"대통령발언 부적절" 70.9%>란 제목으로 여론조사 내용을 발빠르게 게재했다. 참으로 발빠른 자세다. 당일 오전 대통령 발언을 두고 오후에 전화로 여론조사해 70%로부터 '부적절하다'는 답변을 끌어냈으니 이 얼마나 감탄스러운가. 당일 대통령의 그러한 발언이 있었는지조차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을텐데, 그렇다면 당연히 '모름'이거나 '무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야 하지 않겠는가?
중앙일보는 7일자 <"수도이전 반대" 52.7%>에서 "반대한다는 응답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다 일부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량이 수도이전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을 것으로 답해 앞으로 논란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고 역시 동아도 같은 날짜에 <수도이전 "반대" 51%-"찬성" 40.9%…현대리서치>라고 보도했다.
동아는 이에 앞서 6월 16일자 <행정수도 이전 '찬성' 41% - '반대' 50%>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0.5%로 '찬성한다'는 응답(41.1%)보다 9.4%포인트 앞섰다고 보도했다.
문화는 7월 12일자 사설 <수도이전 논란 여권 인식 온당치 않다>에서 여론조사 내용을 인용했다.
"수도이전 논쟁의 본질과 반대론에 담긴 충정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무 갑갑하기 때문에 여론조사결과를 인용할 수밖에 없다. 한겨레가 지난 1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수도이전에 대해 찬성 37.9%, 반대 55.3%로 나타났고, 특히 반대 이유로 '충분한 검토나 국민합의를 거쳐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 81.7%에 이르렀다"(문화일보 7월 12일자 사설)
문화는 여론이 높기 때문에 수도이전이라는 국가적 담론이 벌어지고 있으며 한템포 호흡을 조절하라고 주문했다. 이미 국회의 정당한 절차를 거쳐 통과된 법률에 대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고 그 근거로 다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설득력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25일자 문화일보는 자신들의 지면에 다음과 같이 실었다.
"자신의 원망(願望)과 배치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하여 국회가 더 이상 국민의 대의(代議)기관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정치·경제적 이해 집단으로 단죄하는 것은 그 국회의원을 뽑은 국민을 욕보이는 것이다. … 우리는 절차의 정당성에 주목하여, 어떠한 결과든 그 결과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제 여론은 민심이고, 민심은 최고선이며 진리라고 주장하는 오래된 신화의 해악을 깨달아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 70%가 탄핵을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탄핵에 찬성하는 나머지 사람이 악의의 편에 선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는 천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 여론을 천심이라 믿으면 다수가 진리가 되어 소수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문화 3월 23일자 포럼 <탄핵심판 '여론재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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