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창간 84주년을 맞아 연재하고 있는 ‘역사다큐 운명의 20년’에서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평가(2004년 7월 14일자) 부분조선일보
‘역사다큐 운명의 20년’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망국의 비운을 맞게 되는 역사의 중대한 결절점 동학농민운동(1894) 11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그 좌우 10년씩을 포괄해 갑신정변(1884)에서 러일전쟁(1904)에 이르는 20년을 다루고 있는 심층 역사기획 연재물이다.
위 글만 본다면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해 있던 한말, 침략 세력 일제에 맞서 조국을 지켜내고자 했던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자 하는 조선일보의 노력이 묻어 나는 듯하다.
식민 시절 반일의 역사에 대한 박제화 작업
위 글이 연재된 7월 14일은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진상규명 특별법’(이하 친일특별법)의 조사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된 날이기도 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일부 친일 경력 신문과 과거 친일 행위와 연관된 국회 내 기득권 세력의 공세로 그 조사 대상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친일특별법을 17대 국회에서 다시 원래 상태로 복귀시키고 그 의미를 제대로 되살리려고 한 노력이 친일특별법 개정안 제출이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반응은 너무나 냉랭하였다. 특별법 개정에 대해 조선일보가 할애한 비중이나 논평의 방향을 보면 특별법 개정에 대한 그들의 지극히 냉소적이고 불편한 시각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처절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동학농민전사의 모습을 바라보던 예우와 동경의 시각이 보다 철저한 친일 세력 척결을 위해 개정된 특별법 문제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다르게, 아니 반대로, 완전한 냉소와 조소로 돌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같은 날 신문 지면 속에서 지면을 넘기자마자 느껴야 했던 황당한 두 시각 사이의 차이에 독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일한 날, 비슷한 주제의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두 시각을 보이고 있는 조선일보를 보며 우리는 과거의 죽어버린 역사에 대한 씁쓸한 박제화 작업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냉소와 조소 위해 두운(頭韻)까지 맞춘 표제
조선일보는 7월 14일과 15일자에서 친일특별법 개정에 대한 해설과 보도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기사 표제에서도 풍겨나듯이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냉소와 의심, 그 이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두운까지 충실하게 맞춘 표제에 냉소와 조소가 가득 묻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