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그슬리면 껍질마저 쫄깃합니다. 삶아서 닭껍질을 뽕잎에 싸서 드시면 더 쫄깃합니다.김규환
집에서 보신탕을 끓여먹던 신혼 초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이 초복이다. 남들은 회사에서, 이웃끼리, 친구와 함께 더위를 이길 궁리를 하는 초복이다. 개고기를 먹을까, 삼계탕을 먹을까, 수박 몇 덩이를 자를까 고민하고 있는 그들이 부럽다. 소호족이나 자유업, 혼자 근무하는 사람들의 비애를 그들이 알까?
결혼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고기를 집에서 먹을 수 있었던 건 내 몸이 허한 구석이 드러났던 신혼 초다. 그나마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앞으로 그런 상황이 죽 이어질 줄 알고 희희낙락 했던 바보 같은 나였다. 드디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미신을 믿어 “먹지 말라”고 하시던 굴레에서 당당히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허락을 받고 아내가 없는 동안에 토란대, 고구마순 등 말린 나물을 불렸다. 홍고추와 들깨를 갈아 물을 내고 마늘 생강을 준비해 놓았다. 맹물로 먼저 끓여 한번 물을 따라버리고 된장 간을 약하게 하여 슬슬 익혀나갔다. 준비해 둔 양념과 국물을 마저 넣고 푹푹 삶아주니 예닐곱 근 되는 고기는 참 맛있게도 삶아졌다.
그 솜씨는 음식까지 파는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손님용으로 길렀던 개를 열댓 마리 처분해 전라도식으로 보신탕을 끓여주던 실력이었다. 국과 탕이 전공인 나는 녹슬지 않은 내 음식 비결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대파를 오므려 넣고 부추를 숭숭 썰어 곁들이고 매운 풋고추를 다져서 탕에 탔다. 그 진한 국물에 밥을 조금 말고 소주를 한 잔 마시니 그 동안 쌓였던 노폐물은 땀을 따라 밖으로 모두 나와 몸이 가뿐해졌다. 이사 간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서 이틀에 걸쳐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그렇게 내 생의 봄날은 화려했다.
그런데 웬 걸. 그걸로 끝이었다. 일산 쪽에서 토종개고기를 사다주기까지 했던 아내였지만 그걸 먹고 나자 표독스럽게 변해갔다. 서서히 자신의 성장과정을 이야기 하더니 언젠가는 법당에 가서 절을 하라고 한다. 장모님은 시주를 하고 이름까지 올리라고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밥도 부처님이 농사짓지 않은 쌀 아니면 먹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파, 마늘, 부추, 양파, 달래는 아예 먹질 않는 처갓집이다. 이 상황에서 개고기까지 집으로 사오면 아내에게 바가지로 욕을 먹을 건 뻔하다. 아니 애걸복걸 복달아난다고 야단법석일게 분명하다. 차마 개고기 먹겠다는 말을 못하고 지내온 몇 년 동안 불쌍한 닭만 수십 마리 해치웠다. 가련한지고.
이렇게 몇 년을 더 살면 아마 나는 살만 뒤룩뒤룩 찌고 허전함만 가득할지 모른다. 즐기지는 않지만 매년 복날이면 한번 먹어봐야지 하면서도 잊고 지나치기 쉬운지라 아직도 포기를 못하고 나는 꾀를 내기로 했다. 내 잔꾀를 아내가 알 턱이 없다. 그럼 오늘은 그 비밀을 털어놓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