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피해자 우리로서 족하다"

[파병반대 전국 도보행진단 - 4일째] 광주 방문

등록 2004.07.28 08:22수정 2004.07.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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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피해자와 함께하는 파병반대 전국도보행진단이 27일  오후 4시경 패트리어트 미사일부대 배치 반대 집회를 갖고 있는 광주전남통일연대와 결합하기 위해 광주 송정리 제1전투비행단 정문에 들어서고 있다.
전쟁피해자와 함께하는 파병반대 전국도보행진단이 27일 오후 4시경 패트리어트 미사일부대 배치 반대 집회를 갖고 있는 광주전남통일연대와 결합하기 위해 광주 송정리 제1전투비행단 정문에 들어서고 있다.오마이뉴스 이국언

"친구라는 탈을 쓴 악당과의 약속을 위해, 마치 아버지가 자식의 목숨을 내놓는 꼴과 같다. 전쟁 피해자는 우리로서 족하다. 정부는 65년 한일협정 문서나 공개해 60년 묵은 전쟁피해 문제부터 해결하라. 우리 손주들만큼은 평화속에 살도록 내버려둬라."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구를 이끌고 폭염 속에 아스팔트에 나섰다. '전쟁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이라크 파병반대 전국도보행진단'(단장 최봉태 변호사)이 27일 광주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한 4일째 도보행진을 펼쳤다.

도보행진단은 27일 오후 망월동 5·18국립묘지를 참배한데 이어, 올 가을 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 배치가 계획된 송정리 제1전투비행단 정문 앞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파병반대 목소리를 이어갔다. 또 저녁에는 저녁 충장로 삼복서점 앞에서 진행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등 찜통 같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일 강행군을 펼쳤다.

태평양전쟁유족회원, 노구 이끌고 '파병반대' 한 목소리

도보행진 4일째인 27일은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원 50여명이 이라크파병 반대 행진에 합류했다. 이들은 일제시대 강제징용이나 징병에 끌려가 직접 부상을 입은 피해 당사자나, 부모들의 생사도 모른채 고통스런 한 생을 살아온 유족들. 이날 도보행진에 합류하기 위해 멀리 진도, 해남, 곡성 등지에서 올라 온 길이다.

전쟁피해자들이 도보행진단과 함께 광주 송정리 제1전투 비행장 정문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전쟁피해자들이 도보행진단과 함께 광주 송정리 제1전투 비행장 정문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국언

휠체어 왼쪽은 최순덕(93)여사. 가운데는 이금주(84) 광주태평양전쟁유족회장, 오른쪽은 중증장애인으로 종주에 나선 최창현(39)씨.
휠체어 왼쪽은 최순덕(93)여사. 가운데는 이금주(84) 광주태평양전쟁유족회장, 오른쪽은 중증장애인으로 종주에 나선 최창현(39)씨.오마이뉴스 이국언

이라크 추가 파병에 반대하는 시위와 규탄성명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쟁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파병 반대 순례행진을 이끌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4일 부산을 출발한 도보행진단은 28일 전북익산 29일 천안·대전, 30일 평택·매향리를 거쳐 31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쟁 피해 당사자들이 파병반대 행진에 나선 것은 전쟁의 참상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기 위한 것. 지난해 11월부터 평화유랑단을 이끌고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 도보행진단에 힘을 보탰다. 문 신부는 예정된 순례일정을 뒤로 제치고 24일부터 도보행진단에 합류했다.


순례행진단은 오후 4시경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 배치 계획이 발표된 광주 송정리 공군 제1전투비행장 정문에 도착해, 미사일 배치 반대 집회를 갖고 있던 광주전남통일연대와 남총련 등 300여명과 함께 이라크 추가 파병과 페트리어트 미사일 부대 배치를 규탄했다.

오마이뉴스 이국언
문정현 신부는 인사말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힘없는 노약자나 부인들, 아이들만 죽는다"며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거짓정보를 일부러 과장해서 전쟁을 일으켰으니 부시야말로 범죄집단이 아니냐"고 노무현 정부의 추가파병을 규탄했다.


집회를 마치고 전쟁 피해자들은 광주전남통일연대 소속 300여명의 시민·학생들과 함께 도보행진을 펼쳤다. 일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은 휠체어에 의지해 도보행렬에 함께했다. 순례단은 이어 오후 8시경 광주 충장로 삼복서점 앞에서 파병반대 촛불시위를 이어갔다.

촛불시위에서 김정길 광주전남통일연대 상임의장은 "김선일씨는 이라크 무장단체가 아니라 미국과 노무현 정부가 계획적으로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제2의 이라크 전쟁, 제3의 이라크 전쟁이 어디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고 노무현 정부의 추가파병 방침을 규탄했다.

70세, 80세 고령의 전쟁 피해자들이 손자 손녀들과 함께 아스팔트 맨 바닥에서 추가파병을 규탄한 27일. 8월 3일로 예정된 정부의 추가 파병은 불과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파병반대, 전쟁피해자의 마지막 양심의 소리”
폭염 속 도보행진에 나선 사람들

▲ 광주시 충장로 삼복서점 앞에서 개최된 촛불시위에서 할머니들이 촛불이 꺼트리지 않으려 손을 모으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국언
최창현(39)씨는 중증장애인이다. 휠체어에 의지해 부산에서부터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최씨는 "지난 4월 탄핵정국 때 8일동안 대구역에서 청와대까지 국토종단 순례를 갖기도 했다"며 "이라크 파병 결정을 보면서 지금은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평화를 깨트리는 미국의 침략전쟁에 왜 우리가 파병해야 하느냐"며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하는데, 이라크 전쟁을 보면 미국이야말로 악의 축이다"고 말했다.

이날 도보행진에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전남여고보(현 전남여고) 백지동맹(시험거부 투쟁)을 주도한 93세의 최순덕 여사가 직접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이 학교 1회 졸업생인 최 선생은 이 사건으로 당시 강제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최 여사는 "보잘 것 없는 노인이지만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파병반대 도보행진에 함께 하겠다"며 "전쟁은 꿈도 희망도 다 짓밟는 짓이다"고 말했다. 최 여사는 "일제 침략으로 꽃다운 젊은 시절을 채 피어보지도 못했다"며 "지금 이라크 민족이 당한 참상이 내가 그때 겪은 그 심정이다"고 말했다.

"유족들, 비참한 현실부터 살펴라"

이금주(84) 광주태평양전쟁유족회장은 "배고픈 시절에 아버지 잃고 어디 가서 밥도 얻어먹도 못하고 거지같이 살거나, 남편 잃고 미망인이 되어 한 많은 세월을 살았다"며 이라크 파병 반대에 나선 심경을 토로했다.

이 회장은 "일본 놈들 때문에 우리가 그만큼 당했는데 우리 손주들까지 그렇게 희생당하게 할 수 없다"며 "전후 60년 동안 제 나라 백성이 얼마나 비참한 세월을 살았는지 조차 모르다보니 나온 소리"라고 꼬집었다.

도보행진단을 이끌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전쟁 피해자만큼 전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우리 사회의 평화지수는 일제나 한국전쟁 피해자들이 그후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단장은 "전쟁 피해자들은 지금 휠체어에 의지해 마지막 양심의 소리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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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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