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91

멈춰버린 그림자

등록 2004.07.29 08:59수정 2004.07.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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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계시오?"

혜천과 끔적이, 백위길이 곤히 잠들어 있는 방문을 누군가 조심스레 두드렸다. 끔적이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지는 않고 문간에 귀만 갖다대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무슨 일이냐?"

"큰일났사옵니다. 마포행수(行首) 정가와 어물전 김삼식이 칼을 맞았습니다."

마포행수와 김삼식은 끔적이가 시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를 지지하고 나선 이들이었다. 옴 땡추 박충준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들이 칼을 맞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 있으면 안되겠소이다."

어느덧 말소리를 들은 백위길이 일어나 애향이를 깨우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끔적이가 백위길의 뒷덜미를 낚아채었고 동시에 창호지와 문살을 박살내며 칼자루가 튀어 들어왔다.


"이놈!"

끔적이는 몸을 날리며 문과 함께 밖에서 칼을 들이밀었던 사람을 걷어차 버렸다. 천으로 얼굴을 가린 괴한이 방금 끔적이를 불렀던 사내와 엉기며 쓰러졌다. 끔적이가 그를 잡으려 했으나 괴한은 사내를 끔적이에게 밀어붙인 후 그대로 달아났다.


"혀, 형님… 면목없습니다. 저 자가 피묻은 칼로 위협을 하며 절…."

끔적이는 사내의 말을 들을 사이가 없다는 듯 급히 애향이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애향이는 막 잠에서 깬 듯 허둥지둥 방문을 열어 보았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오."

혜천의 말에 백위길은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가면 어디로 가겠소이까?"

"아직 믿을 만한 사람이 있소이다. 다소 불편하겠지만 말이오."

그 말에 백위길은 더 따질 것도 없다는 듯 서둘러 나섰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건만 이순보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앉아있었다. 키다리 땡추 채수영이 다녀간 이후 이순보는 짧은 칼을 꼭 끌어안은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사소한 기척에도 놀라게 되었다. 그런 이순보가 문간에 어른거리는 사람그림자를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소리를 지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림자는 쏜살같이 문간에서 사라졌고 이순보는 놓치면 안 된다는 심정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인근에 살고 있던 포교들도 그 소리에 놀라 모두 집밖으로 뛰어 나왔다. 도적을 잡는 데는 이골이 난 포교들인데다가 동네 주위사정을 잘 아는 지라 괴한은 순식간에 도망갈 길이 막혀 버렸다. 더 이상 다가오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중얼거리며 복면을 한 괴한은 칼을 빼어들고 조여오는 포교들을 위협했다.

"이놈! 간 큰 도적이구나! 어찌 포교의 집을 노린 단 말인가! 썩 칼을 내려놓고 포박을 받으라!"

어느새 인근에서 순라를 돌던 포교와 포졸들이 달려와 횃불을 밝힌 채 괴한을 둘러쌌다. 괴한은 절망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다가 뒤에서 덮친 포교들에 의해 칼을 놓친 채 복면이 벗겨졌다.

"이 자는 무예청 별감이 아니오?"

누군가 그의 얼굴을 알아본 포교가 소리쳤고 사람들은 뜻밖의 인물임을 깨닫고선 놀라기 시작했다. 무예청 별감은 포교들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 다른 일이 있어 이곳을 지났거늘 어찌 도둑으로 몰고 이런 단 말이오? 놓아주시오!"

포교들은 기가 막힌다는 듯 비웃음을 날리며 별감에게 따져 물었다.

"어찌 무예청 별감이라는 자가 복면을 하고 칼을 휘두르며 포교들의 집을 기웃거린단 말인가? 내 놈은 옥으로 끌고 가기 전에 쓴맛부터 볼 일이다!"

포교들은 저 마다 돌아가며 별감을 후려쳤고 이순보는 이런 광경을 뒤로 한 채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게 어찌 되어 가는 일인가? 만사에 신중하기 이를 때 없는 박충준이 이런 행위를 할 정도로 급한 일이라면… 역시 채수영의 일 일터! 겁을 내며 그를 그냥 보낸 것이 내 실수다!'

포교들의 욕지거리와 함께 끌려가는 별감의 뒤로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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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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