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를 낳다가 죽은 흰돌이, 산골 배추밭을 지킬 때.박도
아내를 따라 죽은 수캐 이야기
두 달 후쯤 필자가 다시 안흥 마을로 내려오면서 곧장 노씨 집에 들러 개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런데 노씨 부부가 모두 개 이야기에 풀이 죽어 있었다.
“선생님, 제 잘못으로 그만 다 잃어 버렸어요. 그렇잖아도 얼마 전에는 원주 방송국에서 면사무소로, 면에서 우리 집으로 개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방송에 내 보내겠다고 문의까지 왔어요.”
“네에?!”
“흰발이란 놈이 새끼를 낳던 날이었어요. 초저녁부터 낳기 시작했는데 다섯 마리를 낳았을 때 마침 옆집 아우가 형님 술 한 잔 하자고 오래요. 그래서 별일 있겠느냐고 한 30분 다녀왔지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여섯 번째 놈이 거꾸로 나오다가 걸려버린 거예요. 어미가 안간 힘을 쓰다가 어미마저 숨을 거둔 거예요.
죽은 어미와 새끼를 모두 아우네에게 주고 살아있던 새끼 다섯 마리까지 아우 보고 기르라고 다 줘 버렸어요. 그런데 그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았던 수캐 흰돌이란 놈이 그날부터 잘 먹지도 않고 시름시름 앓더니 그 놈마저 닷새 만에 죽어 버렸어요. 아우 집에 보낸 새끼 다섯 마리도 매일 한두 마리씩 모두 다 죽었어요. 참 개란 놈이 보통 영물이 아니라요. 술이 원수지요.”
“…….”
개집에는 한 마리도 없었다. 노씨 부부는 졸지에 개 여덟 마리를 모두 잃어 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수캐 흰돌이의 죽음이다. 암캐가 죽자 밥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가 암캐를 따라 죽었다는 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정숙치 못하거나 부도덕한 짓을 할 때, 가장 많이 앞에다가 갖다 붙이는 동물이 개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랄 때 이따금 암캐가 새끼를 낳으면 여러 종류의 색깔 새끼를 낳기도 하는데, 그러면 어른들은 저 검은 강아지 애비는 앞집 검둥이요, 저 흰 놈 애비는 뒷집 흰둥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학교 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에 보면 암캐가 하루는 이 놈하고 짝짓기를 하고,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녀석과 짝짓기를 하곤 했다. 암캐만 그런 게 아니라, 수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사람도 아무나 사귀고 파트너를 자주 바꾸면 앞에다가 개X라는 불명예스런 호칭을 붙인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과는 달리 암캐를 따라 죽는 수캐의 그 순정이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부부애로 감동치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부부는 평생 동안 서로밖에 몰랐다. 긴 여름날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하루 종일 마주 보면서 지냈다. 어쩌다가 주인이 와서 먹이를 주고 잠깐 목줄을 풀어줄 때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누곤 했다.
원천적으로 다른 개를 넘볼 수도 없었다. 흰발이와 흰돌이는 오직 둘이서만 고독한 나날을 보내며 마주 보며 대화를, 눈빛을, 사랑을 나누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의 순수한 2세가 태어나는 날이다.
초산이지만 아내는 자식들을 쑥쑥 잘도 낳았다. 그런데 다섯 마리까지 잘 낳던 아내가 여섯 마리째에서는 새끼가 자궁에서 나오지 못하자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른다.
자기가 가서 입으로 물어서 새끼를 꺼내고 싶지만 주인이 목줄을 묶어 놓은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인은 그런 것도 모르고 옆집에 가서 술잔만 들이키고 있다.
아내는 계속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다가 그만 지쳐버렸는지 소리도 없다. 목줄을 잡아당겨보아야 내 목만 조일 뿐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 정말 너무하다. 저희들은 자식도 낳지 않나. 이럴 때라도 내 목줄을 좀 풀어 주면 안 되나?
헐떡이던 아내가 흰눈을 뜬 채 다섯 새끼를 남긴 채 숨을 거뒀다. 그리고 하루에 한두 마리씩 새끼들이 “엄마 없는 세상이 싫어!”하면서 아내를 따라갔다. 곰곰 생각할수록 남편 노릇도 애비 노릇도 하나도 못했다.
더 살아 봐야 사람들에게 개 취급밖에 더 받겠는가? 실컷 부려 먹고 복날 개 패듯 두들겨 패서 죽일 테다. 그래 나도 순정파답게 죽자. 더 이상 열 받아서 못살겠다.
그리고 아내 흰발이가 죽은 지 닷새 후, 흰돌이는 아내를 따라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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