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보여주는 사랑은 힘들다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고...

등록 2004.08.02 18:40수정 2004.08.0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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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어려운 거다. 복잡하고 예쁜 거지.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처럼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지도 않다. 그러다보니 정답이 없어서 늘 혼란스럽다. 게다가 사랑은 수영과 같아서 빠져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는데…. 정말 그렇다. 이번에 빠진 사랑은 지난번에 빠졌던 사랑과는 또 달라서 그에 맞는 새로운 대응법이 필요하다. 그러니 복잡하고 어려울 수밖에….

사랑이 더욱 복잡한 이유는 내 사랑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그 사람의 사랑이 시간차를 두고 어긋날 수도 있고, 아예 그의 사랑이 다른 상대에게 향할 수도 있다. 내 사랑이 반드시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때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럴 때 맹목적으로 사랑에 매달린다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게 매달려 봤자, 아예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을 붙잡아 봤자, 내 사랑이 힘들어질 뿐이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미련이 길어지면 사랑은 희미해지고 집착이 남게 된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다른 감정으로 변해 버린다. 물론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은 슬프지만 아프고 괴롭다고 해서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상처를 준 사람은 그런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즉, 비록 상처를 준 건 그 사람이라 해도 상대방이 그 상처를 책임질 수는 없다. 위로해 줄 수는 있겠지만 상처를 낫게 할 수도, 그래야 할 의무도 그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다. 물론 기대했던 어루만짐조차 얻지 못했을 때 상처는 더욱 깊어지겠지만. 그 때에도 돌아서지 못하는 사랑은, 두 사람 모두 힘들게 한다. 아니, 때로는 주변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한다.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 속 수혁(이동건)이 그렇다. 수혁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수혁은 태영(김정은)을 좋아하지만 태영은 기주(박신양)와 사랑하는 사이다. 태영을 먼저 알게 된 것은 수혁이지만 어차피 사랑이란 게 시간이나 만나는 순서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태영은 수혁의 마음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완곡하게, 그리고 또 다시 단호하게. 그런데도 수혁은 돌아서지 못했다. 힘들게 “이제 미련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또 다시 “이제는 네 앞에서 돌아서지 않겠다”고 말한다.

수혁의 사랑은 괴롭다. 그러나 수혁이 사랑한 두 사람, 태영과 기주의 사랑도 힘들다. 여기에 수혁과 기주의 출생에 관계된 복잡한 일들이 얽혀 있어 사랑은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기주에게 늘 모든 것을 빼앗겨왔다고 생각하는 수혁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이들의 복잡한 관계는 단순한 ‘애정관계’를 넘어선다. 수혁은 피해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복수’를 시도하는 동시에 태영의 사랑을 강제로 빼앗으려 한다. 물론 사랑은 강제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마도 수혁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겠지.


물론 수혁만 그런 건 아니다. <파리의 연인>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많은 인물들은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슬퍼하고 괴로워하다가, 상대에게 강요하기 시작한다. 내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수혁은 태영에게 “너 왜 내 말 무시하니”라고 했지만 오히려 태영의 말을 무시한 건 수혁이다. 사랑할 수 없다는 사람에게,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나는 너를 갖겠어, 라니.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때론 상대에게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윤수혁 어록>이란 게 있었다. “이 안에 너 있다”라는 인기 대사 다음에 오는 말은 “난 네가 참 좋다.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해” 였다. 달콤하고 로맨틱한 고백일지 모르지만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좋아해 달라는 논리가 사랑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많은 주인공들은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일편단심’이나 ‘로맨티스트’ 같은 말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왜곡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이 현실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치고는 현실에서 그렇게 흔한 사랑의 모습은 아니다.

정말 사랑이야기를 잘 다루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수혁이 그렇게 변해버리지 않으면 재미있던 드라마가 ‘그저 그런’ 재미없는 드라마가 될까? 그렇진 않을 거다. 50%를 가뿐히 넘었던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출생의 비밀이니, 빈부의 격차니 하는 것들은 접어두더라도 드라마 속 사랑은 언제나 역경과 고난이 너무 많다.

삼각관계, 사각관계 때문에 생기는 작위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어려움들이 너무 많다. 물론 현실의 사랑도 복잡하고 어렵지만 드라마 만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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