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간호사가 되었을까?

간호대학에 꼴찌로 입학하다

등록 2004.08.08 23:52수정 2004.08.09 10:0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언젠가 보건진료소가 너무 지겨워서 다른 일자리로 가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늘 생각만으로 그치긴 했지만 꽤 오랫동안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이기도 했다.


안면이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있었는데 선배가 하는 병원에서 간호사를 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그 얘기를 했다. "개인병원에서 간호사 구한다는데 전화해서 어떤 자리인가 알아볼까요" 했더니 안 된다고 하면서 붙이는 그 이유가 참 웃기는 것이었다.

내가 개인병원 간호사가 되면 자기 자존심이 상한단다. 보통사람들 인식이 간호사라면 별로 인데 더구나 개인병원 간호사라면 더욱 더 곤란하고 특히 자기랑 아주 가까운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란다. 커다란 종합병원 수간호사쯤이나 되어 간다거나 하면 모를까. (종합병원 수간호사가 아무나 하는 것인 줄 아는지...)

내겐 그런 선입견이 없다. 종합병원 간호사나, 개인병원 간호사나, 나 같은 보건진료원이나, 보건소 공무원이나 다 같은 간호사일 뿐인데 그 사람에겐 같은 간호사라도 등급을 매기는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 내가 개인병원 간호사 하는 게 왜 자존심 상해요 ? "
" 그게 보통사람들 시각이예요. 그런 면에서는 나도 평범한 보통 사람이구요."
" 그럼 지금의 난 자존심 안 상해요 ?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는 촌스런 사람인데."
" 지금 있는 자리야 우리가 처음 만날 때부터 있던 곳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곳이지만, 설령 그런 생각을 해 봤다해도 지금 하는 일은 개인병원 간호사와는 달라요. "
" 다를 게 뭐 있어요 ? 어차피 똑같은 간호사인데."
" 아니 달라요.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예요. 내 생각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더라도 그건 이해해요. 그래야 해요."

이 사람의 선입견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게 갑자기 아득해졌다.

누군가 왜 간호사가 되었느냐고 물어보면 아주 그럴듯하게 근사한 이유 하나쯤 만들어 두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긴하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싱거운 이유로 간호사가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아버지가 다치셨을 때 엄마와 언니를 젖혀두고 다 나으실 때까지 내가 치료해 드렸을 때, 가족들이 '너는 나중에 커서 간호원이 되면 좋겠다." 하는 얘기는 좀 있었지만 그것 역시 특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내가 간호대학에 가겠다고 할 때마다 주위에서 한두마디씩 하는 얘기를 제법 많이 들었기 때문에, 간호사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걸 나는 대학에 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옛날에는 간호사라면 선보는 자리에서도 경원시 했다거나, 다른 사람들 더구나 남정네들 속살을 보는 직업이라고 점잖지 못한 직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다.

간호가 발달했다는 서양에서도 나이팅게일이 크리미아 전쟁을 계기로 현대간호를 발전시키기 전에는 간호부란 그 사회의 하층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더구나 나와 아주 가깝다는 사람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난 내 직업을 좋아한다. 힘들 때엔 도망치고 싶어했지만 그래도 내가 간호사란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고 가슴 뿌듯했다. 언제 어디에서도 늘 내 직업을 떳떳하게 생각하고 내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그 것은 단순히 나 혼자만의 자기만족이었을까 ?

중학교 1학년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써내는 게 있었다. 그 때 내가 읽은 책이 나이팅게일 전기였고, 그 뒤로 내 꿈은 늘 간호사 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계기였는데도 난 그 책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나중에 꼭 간호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내 변하지 않은 그 꿈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대학을 선택할 때 아무런 갈등도 없이 간호전문대를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서도 안내고 그냥 지내면 섭섭할지도 모른다는 엄마와 담임선생님의 뜻으로 집에서 버스길로 가장 편한 전기대학에 원서를 내기로 했다. 대입 안내 책자에 나와있는 학과를 쭈욱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다가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학과가 눈에 들어와 아무런 생각 없이 그 학과에 입학원서를 냈고, 등록금을 내는 대신 합격통지서를 접어서 편지함 속에 넣을 때도 전혀 갈등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전기대학을 포기하고 입학원서를 낸 간호대학에 난 보기 좋게 떨어졌고 보결 2순위인가 3순위로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 때의 그 비참함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리다.

나중에 야간대학이라도 간다며 간호학원에 등록했는데, 보결로 합격했다며 뒤늦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었다.

이건 지금도 우리 집에서 가끔 나오는 이야기다. 얼마 전에 대학원서를 준비하는 조카에게 울산에 시집간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 우리 집안에 꼴찌로 들어가서 장학금 받으며 졸업한 애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

난 삼 년 내내 감사하며 살았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내가 간호사가 될 수 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사는 게 즐거웠다. 병원근무로 가지 않고 보건진료원이 된 이유는 병원 실습을 하면서 겪어 보니 나중에 임상에서 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체력이 도저히 따라주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서 난 보건진료원이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15년을 지냈다. 가끔 힘들고 어려울 때 도망가고 싶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알고 싶어 좀 다른 전공분야를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난 아마도 죽을 때까지 간호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골살이하는 직장인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번째 기사를 보내면서...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